[한국교회비사] 한국교회학의 기둥 3. 기독교입국론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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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한국을 복음 위에 정초시킨 언더우드

1934년 한국교회는 한국선교 50주년 즉 선교 희년을 맞았다. 그때 한국교회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언더우드가 설립한 연희전문학교(조선기독교대학)에서 성경교수로서 출발하여 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백낙준에게 「언더우드 소전」의 집필을 의뢰했다. 선교 희년에 근대 한국을 복음 위에 정초 시킨 첫 상주 목사선교사 언더우드를 돌아본 것은 당연한 일이요 시의적절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때 발간된 「언더우드 소전」은 1959년 「연세대학교 창립자 원두우 박사 소전」라는 제목으로 연세대학교 초대총장 백낙준에 의해 다시 발간되었다. 원두우는 언더우드의 한국 이름이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백낙준은 ‘사업에 나타난 원 목사’를 다룬다. “원 박사가 한국에 주재한 전후 삼십일 년을 통하여 그 생애와 활동이 모두 한국에 천국 건설을 위하여 헌신한 생활이었다. 그의 건설적 활동은 다방면이었고, 또한 복잡하였다. 이제 그 사업을 통하여 드러난 원 목사를 소개하여 보려 한다.”

이와 같은 글로 시작하여 백낙준은, 선교사로서의 원 목사, 학자로서의 원 목사, 교육가로서의 원 목사, 성경번역자로서의 원 목사, 편집가로서의 원 목사, 여행가로서의 원 목사, 정치가로서의 원 목사, 평화의 사자로서의 원 목사를 다룬다. 한국에 천국 건설을 위한 언더우드의 헌신적 삶이 다방면이고 또한 복잡했던 것을 백낙준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펼쳐갔다. 언더우드는 과연 한국에 천국을 건설한, 달리 말하면, 근대한국을 복음 위에 정초시켰던 위대한 내한선교사였다.

2. 정치가로서의 언더우드

존 모트의 말대로, 언더우드는 과연 ‘국가경영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백낙준은 ‘정치가로서의 원 목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 목사는 국정을 섭행하거나 삼군을 거느려보거나 합종연횡을 실행한 정치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수완은 타인이 경우소치로나 역량의 부족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업을 성취하여 신국면을 타개한 비범한 혜관에 나타난 것이다.”

백낙준은 정치가로서의 언더우드의 면모로서 미국남장로교회와 캐나다장로교회로 하여금 한국선교를 착수하게 하고 양국을 순회하며 젊은 선교사들을 감화시켜 한국에 오게 한 일, 1910년에는 미국과 캐나다 양국을 다니며 이천만 불에 달하는 거금을 모금하여 교회 각 기관을 든든하게 한 일 등을 들고 있다. 이때 언더우드의 감화를 받아 한국에 온 선교사들로서 레이놀즈 일행, 에비슨, 밀러, 홀크로푸트, 채핀 목사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원 목사의 큰 사랑과 무한한 열정과 큰 희망의 충동에 사로잡히어 한국을 위하여 헌신한 선교사와 한국인사가 많이” 있었다.

또한 한국교회의 근본적 원칙인 자립책, 한국 토착교회의 설립, 교파의 연합 등의 일, 그리고 선교구역 획정, 선교사연합회 조직, 장연 구미포에 선교사 피서지 매입, 한국기독교청년회의 창립과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조직 등이 모두 정치가로서의 언더우드의 공로였다.

류금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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