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93) 존 데이비슨 록펠러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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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교육재단을 설립하면서 우선 미국의 흑인 교육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부커 워싱턴과 같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다. 워싱턴은 수십 년 전 록펠러가 다니던 클리블랜드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었다. 의회는 1903년에 이 재단을 승인했는데 ‘인종, 성, 종교의 차별 없는’ 교육을 이루라는 중요한 근대적인 사명을 부여했다. 이 재단은 전국적인 교육 사업을 펼쳤다. 약 1억 3천만 달러에 달하는 록펠러의 기부금으로 수천 개의 고등학교, 농업학교, 의대를 지원했고, 그 외에 교육 재단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는 많은 교육 관련 자선사업을 추진했다.
록펠러의 가장 현저한 교육 사업은 미국의 의학교육을 개혁하고 표준화한 것이었다. 특히 24개의 종합 대학과 전문대학을 후원했는데 존스 홉킨스 대학, 예일 대학, 하버드 대학, 콜롬비아 대학, 시카고 대학 등이었다. 제3세계를 위한 자선사업에도 큰 공을 세웠다. 록펠러 센터가 있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이 록펠러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자선사업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자선사업을 시작한 후부터 그의 건강은 좋아졌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으며 더욱 신앙생활을 철저히 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계산하는 회계직원 40명을 두고 기업을 경영했을 정도로 철저히 십일조를 드렸다. 부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 핵심에 십일조가 있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물질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를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십일조는 내 삶 전체를 다 드려야 하는 은혜 받은 성도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지만 능력의 하나님께서 그러한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십일조를 30배 60배 100배로 키워 주실 것이다.
그는 청교도적 근검절약을 했다. 오락을 즐기지 않았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삶을 이어갈 때 그렇게 감사하며 기쁘게 살았다. 그가 53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강이 98세까지 산 것은 그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주님의 축복이었다.
그의 삶에는 놀랄 만한 일이 세 가지가 있다. 1)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2)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7억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3) 그가 98까지 살았다. 이런 일을 이룩한 세 가지 원동력이 있다. 첫째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았다. 둘째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훈대로 살았다. 그는 한 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평생 동안 73세까지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셋째로, 성경 묵상이다. 성공적인 삶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 때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평생 이어졌다. 아흔 살이 넘어 시력이 약해졌을 때 옆에서 성경을 읽어 주는 사람을 고용했다. 귀로 성경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습관이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다. 성공적인 삶은 하나님 안에서 살 때 즉 감사하며 말씀대로 살 때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평생 이어졌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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