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소리] 농인선교에 대한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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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선교는 우리나라 개신교 130년 선교와 비교할 때 그리 늦은 감은 들지 않는다. 영락농인교회의 역사를 보면 올해 10월 75주년을 맞이한다. 이북의 평양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농학생들을 가르쳤으므로 그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이북에 농인교회가 있다는 기록은 아직 문서로 발견되지 않았다. 로제타 홀 여사와 이창호 목사님의 이북에서의 농교육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를 두었음은 분명하다. 영락교회 농아부로 시작한 영락농인교회의 1대, 2대 목사님은 청인이셨고 3대 이후부터는 농인 목사님이 그들의 언어로 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농인 목사님의 배출은 젊은 농인들의 신학교 진학률이 낮아졌고 예전에 비해 더욱 저조하다. 농인 청년들의 직업 선택폭이 다소 넓어진 면과 목회자의 길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목회 일을 담당하던 목사님들도 한두 분씩 이제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건강상의 문제로 목회를 중단하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기존의 신도들은 나이가 들어 별세하게 되어 교인의 수가 감소하게 되는 교회도 많다. 젊은 청년과 유아동의 수도 줄어들어 교회학교와 청년회의 운영도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단교회의 적극적인 포교와 물질공세로 정통교단의 교회를 떠나는 농인 신도들도 있다. 더욱이 항존직의 경우도 타교회로의 이전은 농인교회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한다. 농인 목회자가 청인 목회자 보다 월등히 많은 현 시점에서 농인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를 양성하고 지도하는 일에 대하여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있다. 청인 목회자들의 경우 영성세미나 등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는 것에 비해 농인 목회자 사회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미흡한 상황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직이 주기적으로 재교육을 받아 새로운 지식을 축적하고 있고 교수들의 경우는 지속적인 학문연구의 실적과 논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농인 목회자 역시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학과 목양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농인선교 현장을 일반 교회는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보인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농인을 잘 이해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인은 별 장애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농인의 모국어가 수어이고 아직 우리나라에 수어로 된 성경통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않다.

한글로 된 성경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적어 놓은 외국어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청인교회에서 심도있게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조사가 없는 수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그들이 조사가 있는 한글을 쓰는 일은 외국어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도 없는 민족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 외국 선교사들이 와서 처음으로 한 일은 한글로 된 성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농인의 수어성경은 보이는 성경 즉 동영상으로 된 수어영상성경인데 이미 많은 나라가 각기 자신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수어로 된 성경이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쪽 복음만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교회가 농인선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37만 농인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농인교회는 물론 청인교회와 우리 사회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기를 소망해 본다. 이들을 위한 많은 기도의 동역자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안일남 장로
<영락농인교회·사단법인 영롱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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