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294) 존 데이비슨 록펠러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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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악덕 부자로 이름이 나서 청문회에 나가서도 결국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자신의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록펠러 재단, 록펠러 의학연구소, 록펠러 센터를 보아도 그의 자선사업의 업적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 기적을 행하신 것처럼 철저히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세계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그의 노년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신문을 읽은 뒤, 집안과 정원을 다니면서 일꾼들에게 잔돈을 건네주었다. 오전 8시엔 손님들과 함께 기도 시간을 가진 뒤, 성경을 읽고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면 소화가 될 때까지 식탁에 앉아서 혼자 하는 놀이인 누메리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독실한 침례교인답게 그는 카드놀이를 할 때의 일반 카드가 아닌 숫자가 적힌 타일을 이용하여 누메리카를 했다. 이기는 쪽에는 10센트짜리 동전을, 지는 쪽에는 5센트짜리 동전을 두었는데, 혼자서 할 때는 10센트짜리 동전은 오른쪽 주머니에, 5센트짜리 동전은 왼쪽 주머니에 넣으며 게임을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잘하는 손님이나 늦게까지 남아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에게 10센트짜리 동전을 주곤 했다.
밤 9시, 생음악을 들으며 손님들과 담소를 하거나 의자에서 잠깐 졸다가 10시 30분에 설교집 한 권을 들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점차 쉬는 시간을 늘리고 골프 시간이 줄어들었을 뿐 그는 수년 동안 이 스케줄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록펠러는 갈수록 많아지는 손자, 손녀들을 모아놓고 동전을 주면서 교훈을 주었는데 특히 ‘낭비하지 말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얘들아, 돈을 쓸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항상 잊지 말아라.”
록펠러의 회고가 ‘더 월드스 워크(The World’s Work)’지에 1908년부터 1909년까지 7회에 걸쳐 실렸다. 이 글이 ‘사람과 사건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출판업자 프랭크 N. 더블테이는 록펠러와 만난 후 책의 대부분을 집필했다. 이 책은 록펠러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마음만 아프게 하고 세상의 고통으로 내모는 불필요한 경쟁’을 비난했다. 자신을 비난한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나는 비난을 받을 만큼 받았다. 하지만 나는 비난 때문에 괴롭지는 않았으며 그들에 대한 악감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옛날에 한 젊은 기독교인이 살았는데…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사업을 할 때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는 그의 의학 연구소에 대해 출판업자들과 점심 식사를 한 자리에서는 좋은 평을 듣기도 했다. 출판인 겸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록펠러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부드럽고 건전하게 간단하면서도 인간미 넘치게 놀랄 만큼 효과적으로 이야기했고,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에 말이 끊겼습니다.’라고 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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