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씨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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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방송에서 늘 씨름을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해서 방영했던 것을 기억한다.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던 이만기, 이봉걸, 이준희,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펼치는 멋진 시합을 손에 땀을 쥐며 관람하곤 했었다.
운동을 잘 하지도, 또 좋아하지도 않는 필자가 씨름에 몰입했던 이유는 아마 그 시합들이 단순한 힘겨루기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싶다. 작은 몸을 가지고도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선수들을 이길 수 있는 운동, 분명히 졌다 싶었는데 순간 상황을 뒤집는 그 씨름의 기술들이 시합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씨름의 기술은 한마디로 상대방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밀면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끌어당긴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서 작은 힘으로도 큰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이 잡아당기면 버티지 않고 발을 걸고 상대방을 밀어 제풀에 넘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씨름을 볼 때마다 단순한 힘이 아닌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씨름의 기술이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헤쳐 나가는 큰 지혜를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삶 전체를 뒤흔들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원치 않는 질병과 사고, 예상 못한 일들로 인한 뜻밖의 상황이나 기회들이 주어지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때로는 분노하고 좌절하며 기뻐하기도 한다. 아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고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지만, 그중에서도 교회만큼 이 상황에 당황하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주일이면 모이던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된 현실, 목숨처럼 여기던 예배를 영상을 통해 드려야 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학자들도, 목사님들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해결책이 나오기보다는 입장과 생각 차이로 인한 갈등의 골만 깊어져 가고 있다. 교인들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방역지침에 따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교인들의 신앙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닐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니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필자 역시 당혹감과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방역당국을 향한 분노도, 교우들을 걱정하며 내쉬는 한숨도 결코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때 필자는 이 씨름의 기술을 이 상황에 접목해서 답을 찾을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즉 코로나 상황을 교회와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으로 바꿀 수 없을까 하고 말이다. 예배를 마음껏 드릴 수 없을 때에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교회로 모일 수 없을 때에 가정예배를 정착시켜 가정을 작은 교회로 세울 수는 없을까? 잘 살피지 못했던 교우들을 영상통화를 통해 상담하고, 성경 필사나 말씀 암송을 통해 모이는 것에 머물렀던 교회가 아닌 새로운 신앙운동의 계기로 삼는다면 화가 도리어 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황을 역으로 활용할 방법만 찾는다면 이 위기가 도리어 우리에게 두 번 다시는 없을 좋은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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