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능소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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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되면 담장마다 주황색 능소화가 시들어지게 피어나고 있다. 노을 빛을 닮은 능소화가 휘늘어진 골목길을 돌아보며 문득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하긴 요즘 누가 손글씨 편지를 쓸까마는 여하튼 사연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때가 있다.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염천을 능멸하듯 담장을 타고 오르내리는 능소화를 보면 한때의 사랑을 추억하고 싶어진다. 400여년전에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사랑하는 이의 미투리를 삼아드렸던 한 여인처럼 지금도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사랑을 나눌수는 없을까? 능소화 꽃 담장 아래에 털푸덕 주저앉아 여기저기 떨어진 주황색 꽃송이를 주워들고 가만히 살펴보면 그 누구라도 곧 아마추어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듯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당신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이 글은 1998년 경북 안동시 한 야산에서 택지개발 작업중 한 무덤 속에서 발견된 한글편지인데 원이 엄마가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남편 이용태를 그리며 쓴 것이다. 두 물방울이 합해 하나의 물방울이 되듯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살며 몸과 마음을 합해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부부의 인연은 이토록 귀한 것이다. 기쁘고 신나며, 감사하고 애절한 것이다. 인간본성인 ‘희노애락애오욕’의 7가지 정을 모두 경험하는 인간관계다. 최근에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非婚)주의자들이 늘어나고 결혼했더라도 적응에 실패해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자녀출산이 전 세계에서 최하위로 통합출산율이 0.84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1970년대에 1년에 100만명씩 낳던 신생아가 2020년엔 28만명으로 줄어 30%에도 밑돌고 있고 2020년엔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3만명이나 많아 절대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2050년에 가면 우리나라 인구가 현 5100만명에서 2600만명으로 반토막이 될 것이라 한다. 대학 신입생 수도 (2021년) 48만7532명으로 26년만에 50만명선이 깨졌다. 1년에 낙태수술을 받는 32만명을 설득해서 무조건 낳기만 하라. 국가가 책임지고 기르겠다고 보증해야 할 판이다. 28만명 신생아니까 낳을 때 1인당 1억씩만 줘도 28조원이면 되니까 예산은 충분히 마련돼 있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에게 자기 자녀를 길러도 ‘보육사’로 인정해 월 100만원 정도를 준다면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31세에 요절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원이 엄마를 다시 생각해본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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