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갈보리산 위에 선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가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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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이 있는 골고다를 오르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이번 호부터 지면이 줄어서 부득의하게 이미 만들어 놓은 원고를 절반으로 줄이고 사진도 생략하였다. 독자들의 이해와 더 많은 사랑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성묘교회는 고대 예루살렘의 교회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장되신 골고다 중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성지이다. 예수께서 수난당하신 곳에 대하여 성경(요 19:20)은 기록하고 있다. 매장 위치에 대해서 이 새 무덤은 바위 속을 파서 만든 곳으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소유였다.(마 27:60)

예루살렘에서 정원 무덤으로 알려진 곳은 골고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고대에는 무덤이 보통 성벽 바깥 지역에 있었는데, 현재 성묘교회의 위치가 성경 상에 기록된 위치인가에 대한 것은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 이유는 70년 로마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바 코크바(‘별의 아들’이란 뜻) 혁명 때인 135년에 하드리안에 의해 또다시 철저히 황폐해져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유대인이 추방당했고, 또 예루살렘의 폐허를 평탄하게 고르고 그 위에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라는 완전히 새로운 로마 성이 건축되었기 때문에 예수의 무덤이 있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묘교회가 있는 자리는 2세기경 로마의 공회당 장소로 사용되었고, 이 지역의 서쪽 끝 지역에는 로마 제국의 세 신인 주피터, 쥬노, 비너스를 위한 신전들이 세워졌다.

325년 니케아에서 기독교의 공식적 신조가 작성된 이듬해에, 당시 교회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 이 예루살렘 지역에 있는 로마의 우상 신전을 헐어버리도록 요청하였다. 마카리우스는 전통적으로 성묘의 자리로 알려지는 동굴 하나를 북쪽 성벽 내에서 찾아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인 헬레나는 꿈에 십자가를 보고 아들에게 기독교를 공인하도록 요구한 후에, 골고다에서 예수의 십자가까지 발견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후 335년에 골고다에 대성전이 세워진 이후에 오늘날까지 성묘교회는 기독교 최대의 성지로 이어지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십자가가 발견된 골고다에 기념 교회를 짓도록 칙령을 내려 335년에 준공 봉헌되었다. 그래서 성경의 성묘와 갈보리가 함께 골고다의 교회 안에 모두 수용되었다. 

성묘교회는 ‘부활’이란 의미의 ‘아나스타시스(Anastasis)’ 부분과 동쪽의 커다란 회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아나스타시스’ 부분은 주위의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 위의 원형 지붕이 있고 이 무덤으로 회당이 통하게 되어 있다.

성묘교회는 614년 페르시아의 예루살렘 정복 당시 크게 손상을 입었다. 629년에 잡시 보수되었지만, 638년에는 아랍군대가 성묘교회를 점령하고 앞뜰에 오마리(OMARIYEH) 회교 사원을, 1009년에 이집트 카이로 온 칼리프 하켐(CALIPH HAKEM)의 무리는 성묘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유물을 파괴했으며, 골고다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지역의 바위들까지 모조리 파내어 완전히 훼파하였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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