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영] 사랑의 비극은 헤어짐이나 떨어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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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비극은 죽음도 이별도 아닌 무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상담 현장에서 “남편이 친구나 다른 여자한테 하는 것 10분의 1만 나에게 해봐라. 나는 천사처럼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내들을 많이 만난다.

“남편은 세계를 대상으로 사역 하지만 나에게는 사역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푸념하는 어느 큰 목사 사모의 외침이 있다.

변덕스러운 결혼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두 사람의 교집합인 결혼이 아니라 서로 따로 떠다니는 두 개의 풍선과 같은 부부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한 공간에 기거하는 무늬만 부부일 뿐이다. 공감대가 없는 낯선 이방인이다.

갈등하는 부부들에게 사랑의 개념을 물어보면 ‘일체감’을 강조하는 분들이 많다. 부부란 하나여야 하는데 상대는 비밀도 많고 폐쇄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많이 호소한다.

부부 관계의 친밀도를 나타내는데 3가지가 있다. 최소교감, 중간교감, 최대교감이다. 부부가 각자 살아가는 생활반경을 교집합 원으로 그린다면 당신의 두 원은 얼마만큼 교집합을 이루는가? 또 두 원이 얼마만큼 겹쳐지기를 원하는가? 두 원이 교차하는 부분은 부부가 주고받는 감정의 양뿐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 의존도를 나타낸다. 최소교감 관계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삶이 거의 교차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결혼했을 뿐 서로가 너무 달라서 결혼한 독신 같다. 배우자가 출장을 가도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못 느낄 정도이다. 최대교감은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이다. 중간교감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관계이다.

부부란 일체감으로 함께 가지만 때로는 따로 하는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소원하거나 무관심이 아니다. 서로가 간섭하지 않는 구분된 활동과 공간이다. 그런데 그것이 갈등이나 상처로 인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 “부부는 함께 또 따로”인 것이다.

한시라도 만나지 않으면 못 견딜 것처럼 사랑했던 그런 감정이 익숙해지고 무디어지는 것이 문제다.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코’는 폐결핵 환자였다. 병약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와 결혼해 준 남편이 고마웠다.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겨주는 것에 목이 메어 울기도 했다.

그런 결혼생활도 익숙해지고 일상이 되니 시들해진 것이다.

그래 그는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며 큰소리치는 버릇없는 여편네가 되어 버렸노라”고 고백을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성이 되고 매너리즘이 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은혜와 감사 그리고 축복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사랑의 비극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니다. 무관심과 익숙해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The tragedy of love is not separate but indifference.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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