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유대교 통곡의 벽과 이슬람의 황금사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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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산에서 원래 예루살렘 성전은 지금의 모스크 자리가 아니다

지중해의 휴양지 도심의 대규모 폭발참사가 발생한 레바논에서 정권 퇴진을 항의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21년 8월 들어서 15년 만에 헤지볼라가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인 분포도가 많은 레바논 안에서의 뿌리 깊은 내분으로 일어난 미사일 공격이기에 이런 이슬람 정부의 부정부패 자체에 국제사회가 손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레바논 문제는 인근 시리아까지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쟁취한 1948년 이후에도 19년의 긴 세월 동안 요르단의 통치 아래에 있다가, 1967년 6일 전쟁의 승전으로 예루살렘을 되찾은 통곡의 벽(AHKOTEL HAMARAVI)은 예루살렘 성전산에 자리 잡은 서쪽 벽으로서, 헤롯 대왕에 의해 축조된 제2 성전이 70년 로마군에 의하여 파괴된 이래 유일하게 남은 유적이다. 첫 번째 성전 곧 솔로몬 왕에 의하여 세워졌던 성전 터는 원래 이곳이 아니라, 다윗이 모리아 산 앞에 세웠던 제사 장소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이유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성전과 나라를 잃은 슬픔을 푸는 기도를 드린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전 서쪽 벽을 일컫는다. 최고 14m의 길이와 400t이나 되는 돌을 비롯하여 평균 1-3t의 돌을 이용하여 쌓은 높이 16m의 이 성벽은 헤롯 대왕 때의 것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이후 건축이 시작되어 약 60여 년 동안이나 걸려 지은 것들이다. 이 헤롯의 성은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할 때 지렛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막 13:2) 무너뜨렸으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통곡의 벽 아랫부분은 당시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 로마에 의하여 다시 135년에 진압된 유대인의 바 코흐바 혁명 이후에 추방된 뒤,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 1년 중 성전이 파괴된 날 하루 동안만 이 성전 터를 방문하는 것이 허락되자 사방으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여 그들의 비통함과 울분을 달랜 곳이라 하여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 일 년에 단 한 번 성전파괴 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의 흩어짐을 슬퍼하고 성전이 폐허가 된 것을 통곡하였다.

현재 이스라엘 시민은 이 꺼칠꺼칠한 벽돌을 어루만지면서 흐느껴 운다. 이 벽은 유대인의 가장 성스러운 전당의 유적이요, 영원한 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도 기도를 적은 쪽지를 돌 틈 사이에 꽂아 놓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볼 수 있다.

이 벽은 헤롯이 기원전 20년에 개축한 제2 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서기 70년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 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일하게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할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골짜기로부터 4m 넓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성전으로 통하는 이 아름다운 문은 예수께서도 자주 드나드시던 문이 확실하다. 예수 당시의 많은 유대인이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을 찾아와 제사를 지내러 성전으로 올라갈 때 드나들던 문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시편 120~134편의 15편의 시는 바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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