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포럼] ‘9.28’의 기적, 죽은 자들의 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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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이 수복되었다. 1950년 9월 28일! 공산군을 물리치고 서울을 되찾은 승리의 날이다. 이날의 감격은 온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지만 특히 서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진한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적 치하에서 숨죽여가며 노예처럼 살던 서울 시민들에게는 서울 수복이라는 감격을 뛰어넘어 죽었다고 소문났던 이웃집 아들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 ‘기적의 날’이다. 즉 의용군(인민군)에 끌려 나가 죽었다고 소문났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동시에 살아서 나타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사실 전쟁 초기에는 미군이 참전했어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밀리는 수세에 있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또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후퇴하는 바람에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 한 국토의 10%만 남았다. 만일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다시 찾게 되던 날(9월 28일), 마지막까지 남아 저항하던 인민군은 후퇴하면서 양민을 죽이고 처형하기 바빴다. 그러던 죽음의 도시가 오후가 되면서 희망의 도시로 변한 것이다. 그날 서울은 환희와 기쁨이 넘치는 축제와 같은 날이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포위한 가운데 한국해병대(제1연대 2대대)가 한강을 넘어 제일 먼저 서울에 진입했다. 시청 앞에서 적의 저항이 강했으나 무사히 제압하고 9월 28일 새벽 6시경 6중대 1소대장 박정모 소위, 양병수 일병, 최국방 이병 등 세 사람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박 소위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90일 동안 적 치하에서 국군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던 150만 서울 시민은 물론 서울 탈환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환호의 탄성을 울렸다.
서울 진입하는 과정에서 퇴각하는 적을 향한 수백 발의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일부 시민들에게도 피해가 컸다. 홍제동, 미아리 등 시내 몇 군데는 불바다가 되었다. 인민군의 퇴로인 대학로를 거쳐 혜화동→ 돈암동→ 미아리고개를 향하는 도로와 종로5가→ 동대문→ 창신동을 거쳐 미아리로 탈출하는 루트는 피해가 더욱 심했다.
동대문 옆 낙산 정상에는 어느새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누가 그랬는지 목숨을 걸고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내건 것이다. 시민들은 환호를 연발하며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의용군에 끌려가 죽었다고 소문났던 동네 청년들의 모습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집집마다 숨어 있던 젊은이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왔다. 죽은 것이 아니라 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루 밑, 지하실, 창고, 헛간, 화장실 등에 숨어 지내다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청년들은 인민군에 잡혀 트럭을 타고 낙동강 전선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미 공군의 폭격을 당하게 되면 잠시 차량에서 내려 도로가에 몸을 피해 엄폐하고 있다가 폭격이 중지되면 다시 차량에 태우고 이동하였는데 그 순간을 이용하여 뺑소니 친 것이다. 이들은 낮에는 산속에 숨어 있고 밤에만 이동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와 적당한 곳에서 숨어 지냈다.
2-3개월 씩 숨어 있다 보니 영양도 문제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털은 길게 자랐고, 햇빛을 못 봐 얼굴은 창백하고 누렇게 떠서 꼭 중병에 걸린 환자처럼 보였다. 심한 사람은 도깨비나 도사처럼 보였다. 죽었다고 소문났던 사람들이 몰려 나왔으니 골목마다 진풍경을 이루었다. 서로 껴안고 만세를 부르며 생존을 축하하는 모습은 신(神)만이 연출할 수 있는 인간 드라마였다.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기적,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민군들은 도망자들이 각각 자기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왜 몰랐는가? 철저하게 가택수색을 했더라면 많은 사람을 잡아낼 수 있었을 텐데. 인민군 당국이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한국예비역기독군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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