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선(善)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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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公平)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평평하고 고른 것이다. 공정(公正)은 정의(正義)의 관점에서 공평을 추구하는 행위로 양심과 도덕, 법률을 기초로 상황을 고려하지만, 평등은 권리나 의무의 규제를 벗어나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혜택이나 분담을 공평하게 하는 행위다. 예를 든다면 눈앞에 담장이 있다. 각기 키가 다른 세 사람이 담장 너머를 바라본다. 첫 번째 사람은 선 채로 볼 수가 있다. 두 번째 사람은 까치발을 해야 보이고, 세 번째 사람은 까치발을 해도 보이지 않는다. 평등은 차별하지 않고 세 사람 모두에게 같은 높이의 발 받침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정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세 번째 사람에게 좀 더 높은 발 받침대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은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류는 성별의 차이, 인종의 차이, 빈부의 차이, 계층의 차이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 행복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이며, 아직도 진행 중인 중요한 어젠다(Agenda)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지만 둘은 상반된 개념이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범했다.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이 아닌 평등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다 보면 결과가 좋지 못했다. 자유가 없는 평등이 양산하는 불평등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자유주의 틀 속에 사회주의의 평등을 인식했지만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공정이 진리임을 선포한다. 능력에 맞게 주어진 달란트를 사용해 스스로의 힘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사람에 대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태복음 25:21) 칭찬했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한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25:26~28)고 말씀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는 더 큰 은혜를 주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겐 받은 은혜까지 빼앗아 버리는 하나님의 공정에는 모두를 못살게 하는 하향평준화가 아닌 능력에 걸맞은 대우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나눔의 삶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구현한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했다. “계명은 지키고 있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재차 묻는 청년에게 예수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했다. 

나눔은 스스로 하는 선행이다. 계명은 강요된 가치이지만 나눔은 자유를 만끽하는 기분 좋은 가치다. 계명보다 우선순위인 양심의 가치다. ‘기분(氣分)이 좋다’라는 말에는 ‘나의 기를 나눠 좋다’라는 나눔의 진리가 숨겨져 있다. 개인의 선한 의지가 나눔으로 발현될 때 우리 사회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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