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하나님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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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전학교로 복직해서 연구주임으로 많은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도 교육위원회에서 한 공문이 왔다. 동서문화연구소(East West Center)에서 미국의 과학·수학 교사 재교육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과학 및 수학에서 한 사람씩을 뽑아 보내라는 연락이 와서 공문을 이첩한다는 내용이었다. 각 도에서 과학·수학교사 2명을 각각 추천하기로 했는데 전북에서는 공립에서 한 사람, 사립에서 한 사람 해서 2명을 추천키로 하고 사립에서는 기전학교를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외국을 가기 위해 4년이나 준비해 온 나에게 이것은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더구나 그 많은 사립학교 중에서 이 학교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나는 나를 보내 달라는 이야기를 교장에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복직한 지 겨우 일 년이 좀 지난 때였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과학·수학교사의 희망자 중에서 특수 교실을 갖기 원하던 과학교사가 추천되었다. 나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자위하였다. 교장에게 또 떠나겠다고 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다시 떨어져 있자는 말을 꺼낼 용기도 없었다. 나는 2년이라는 공백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방을 얻는데 힘들었고 곗돈, 이자 등을 내고 나면 월말에 받을 돈이 얼마 없는 때였다. 말하자면 봉급은 다 바치고 과외비로 사는 때였다. 낮에는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또 밤늦게 수학 과외를 했는데 하루는 얼마나 피곤했는지 가르치다가 잠들어 버렸었다. 깨어나 보니 책상에 엎드려 나는 자고 있었고 학생들은 다 가버리고 없었다. 그런 경황에 아내에게 다시 떠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왕복 여비와 교육비, 생활비를 다 부담하는 뛰어난 장학금이었다. 나는 수학교사 중에는 적격자가 없어 갓 들어온 과학교사 한 사람을 추천하면서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롯과 가나안에서 거처를 정하면서 여호와의 동산 같은 비옥한 요단 들을 바라보면서 롯에게 네가 먼저 선택하라,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말했던 아브라함의 아량이 하해와 같음이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선정된 과학교사가 서류를 준비해서 낸 후 이 주일쯤 지나서 도 교육위원회에서 통지가 왔다. 교육 경력이 3년 미만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었다. 나는 어렵게 교장실에 가서 이야기했다. 이것은 최종 선발이 아니므로(8개 도와 서울시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9:1의 경쟁이었음) 나에게 응시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비록, 선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보내고 안 보내는 것은 교장의 재량에 있으므로 그때 재고하면 된다. 이렇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겨우 허락을 얻어 서둘러 서류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 교장의 표정으로는 ‘설마 합격하랴. 이 풋내기가 유학, 유학하고 그 꿈을 버리지 못하니 이 기회에 된맛을 한 번 보게 하는 것도 괜찮겠지. 이제 꺾이고 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나와 함께 학교 일을 하겠다고 사정하지 않을까?’ 이랬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서울 고등학교의 생물 선생과 내가 최종으로 선발된 것을 안 것은 1966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된 뒤의 일이었다. 그때 내가 놀란 것은, 교장이 선선히 나를 놓아준 것이었다. 이 결정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재교육을 받는 15개월 동안 봉급 반액을 지급하지 않으면 합격을 취소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기전학교의 교장은 금전에 인색하다는 평을 받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었는지는 하나님의 권고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그 학교가 생긴 이래 그전에도 없었고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그 학교에 그리고 그 교장에게 지금도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일 년 육 개월 동안 나를 다시 기전학교로 보내어 경제적인 기반을 갖게 하고 그곳에서 나온 봉급으로 가족이 생활하게 하며 나에게 예상하지 않았던 장학금을 받게 하여 유학의 기반을 굳혀 주시는 풍성하고도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고국에 돌아가 성전을 지으라고 아닥사스다 왕의 재가를 받은 느헤미야처럼 기뻤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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