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향기] 풍산교회 최종섭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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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수놓으시고, 감당할 능력 또한 주셨습니다

“모든 것 이끄신 여호와 하나님, 영원히 따르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수고를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제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부 수놓아 주셨고, 사명을 주셨고, 그것들을 감당할 능력 또한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경안노회 남선교회연합회 회장, 대구경북남선교회연합회 회장, 경안노회 장로회 수석부회장, 동부지역장로회 부회장, 경안노회 회계, 재정부장 및 동반성장위원장, 전국남선교회연합회 부회장, 총회 선거관리위원회, 교육자원부 회계, 연금재단 대책위원회 회계를 거쳐 현재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을 섬기고 있는 최종섭 장로를 지난 10월 18일 인터뷰를 위해 만나 그의 신앙생활의 시작과 주님과 함께해 더욱 은혜로웠던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 대구경북남선교회장 재임시 30주년 감사예배

◆ 최종섭 장로의 신앙의 시작과 여정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마을에서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교회가 있었고, 친구의 누나가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 누나는 성탄절에 교회에 가면 맛있는 것을 준다고 했고, 그렇게 저는 교회에 첫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최종섭 장로는 어릴 적 간식을 먹으러 갔던 교회생활은 재미가 있었고, 중·고등부 회장까지 맡는 믿음의 사람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에 있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다가 25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고향인 안동으로 다시 돌아와 농사와 건축일을 함께하기 시작했죠. 당시 일터에서 만난 사람의 소개로 풍산교회에 등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봉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현재도 풍산교회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최종섭 장로의 교사로서의 시작은 아동부가 아닌 중고등부였다. 4년여간 중고등부 교사로 섬겨온 그는 당시의 웃지 못할 추억을 전했다. “여름에 50여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학생회 수련회를 갔는데, 목사님이 가지 말라고 말린 장소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행사를 모두 마친 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거에요. 결국 천막이 다 무너져서 비닐을 덮고 밤새 누워있었죠. 우리가 너무 걱정되셨던 담임 목사님이 새벽기도가 끝나자마자 찾아오셨고, 그때 목사님께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최 장로는 당시 집에서 교회까지 4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나갔다고 한다. 청년부 회장도 여러해 하며 그렇게 열심으로 봉사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경안노회 청년연합회를 접하게 되었고 회장직까지 맡게 되며 전국연합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청년연합회에서 아동부를 섬기는 교사들을 만나게 되어 교회학교 아동부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그때 맨 처음 맡은 반이 초등학교 3학년 여자반이에요. 12명의 인원이 토요일마다 시간을 내어서 맛있는 것 먹으러 가고, 다같이 버스 타고 놀러다니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지요. 아직도 사진을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그 아이들과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그들 중 2명이 우리 교회에 계속 남아있는데,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최종섭 장로는 교회학교에서의 봉사 이외에도, “교회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재료비만으로 교회의 이곳 저곳을 손보고 주변 시찰이나 다른 교회들도 고쳐주곤 했다. 그리고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멈춰져 있지만, 교회 차량운행도 21년 동안 해왔다”고 했다.

◆ 사업과 가정에 깃든 주님의 모습

“제가 건축일을 하면서 지금은 현장에 마무리 시에만 가지만, 예전에는 제가 직접 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었어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5번 정도 죽을 고비를 넘겼지요. 외벽을 마무리하다가 발판에서 떨어지기도 했는데, 머리로 떨어져서 큰일날 뻔한 적도 있답니다. 하지만 한 번도 크게 다치거나 부러진 적이 없어요.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주님께서 아직도 저를 사용하실 일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업과 가정 모든 곳에 주님의 감사하심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최종섭 장로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큰아들은 피아노를 전공하고 학원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연예계 쪽에 진출해 있고, 둘째는 전주대학교 음악치료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익산에서 사역을 섬기고 있어요. 큰아들은 피아노로, 둘째아들은 기타로 각각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답니다. 셋째는 삼성화재에서 근무하다, 늦게 영남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 현재 3학년에 재학중이예요. 지금 풍산교회에서 아동부 사역을 돕고, 찬양, 율동, 가끔은 설교도 하고 다재다능하게 활동하고 있어 뿌듯한 마음뿐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며, 사업도 가정도 모두 주님께서 인도하셨고 자신이 잘나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최종섭 장로는 말한다. “내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다보니 지금까지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 가족사진

◆ 다음세대에 대하여

최 장로는 “현재도 교회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보니, 교회학교를 하면서 제일 많은 보람을 느꼈다. 교사로 지내면서 아이들이 많이 늘거나, 마음을 어렵게 하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변화되어 신학을 하고, 사역자로 주께 불려가는 모습을 볼 때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늘 똑같이 나를 좋아하고,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놀자고 뛰어들고, 게임하자고, 함께하자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 기쁘고 보람차다”고 말했다. 또한, “30여년 전부터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교회에서 하고, 아동부 아이들과 함께 전국에서 열린 어린이 캠프를 다니면서 아이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일생의 신앙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어린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 총무로 봉사할 적, 지금은 KTX가 생겼지만, 그때는 안동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왕복 5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일주일에 1-2회씩 오가며 끝까지  임기를 마친 것이 연합회 활동 중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이야기한 최종섭 장로는 현재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전국어린이대회를 코로나 가운데에 대면 형식과 비대면 형식을 섞어서 진행했습니다. 이는 각 지노회와 협의회가 함께 해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었죠. 코로나 상황에서도 70프로 정도의 노회들이 행사에 함께해 주었고, 노회 대회때부터 모든 행사를 비대면으로 진행한 서울 강남지역의 노회들이 그들의 노하우로 전국대회를 함께해 주어 탈 없이 대회를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교회학교아동부전국연합회회장으로서의 사역 중 가장 큰 기쁘고 보람된 일이었어요. 그리고 전아연에서는 어린이대회에 이어 11월 12일-13일, 전국교사수련회를 앞두고 있어요. 교사들이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많이 참석해서 함께 기도하고, 교회학교를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최종섭 장로는 “시대가 많이 변하여 교회학교 교육환경이 어렵고, 삶의 환경이 변화되다보니, 교회학교 교사들이 옛날처럼 큰 사명감을 가지기 어렵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든 일에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접근해봤으면 한다. 그러면 그 작은 일 가운데서 큰일이 생겨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전했다.

▲ 아동부영남협의회 어린이대회

◆ 앞으로의 계획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향기가 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의 향기가 없는 활동을 했다면, 그건 자신에게는 유익이 될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바르게, 주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행하고, 제가 속한 어느 곳이 되었든 그곳이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답니다. 특별히 목표로 하는 계획은 없어요. 다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이끄시는 대로 그 삶에 맞춰 열심히섬기며 봉사할 계획이예요.”

◆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신 일

“제가 결혼하기 전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며 서원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베필을 주시고 이런 자녀들을 주시면, 제가 어떤 일을 맡아도 끝까지 묵묵히 짐을 지고 나가겠다는 내용이었지요. 주변사람들이나 가족들은 ‘뭐하러 이렇게까지 힘들게 봉사하느냐’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것을 더 중하게 여기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전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고,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다고 생각돼요. 2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았는데, 최근 차를 타고 가면서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며 너무나 감사한 일들이 많아 혼자 운적이 많아요. 무익한 종 같은 저를 하나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함께해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여기까지 세우셨다 생각됩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1편)
최 장로는 가장 좋아하는 말씀구절로 시편 131편을 꼽았다. “여러 직분을 맡다보면 제 자신 스스로가 교만해지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늘 이 말씀으로 스스로를 다잡고 겸손하게 나아가려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시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실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어요. 그저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을 행복하게 누리며 나아갈 것입니다.”

/석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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