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나섬의 존재방식과 신 목사의 손끝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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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잃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섬에는 나 같은 아니 나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신 목사다. 신 목사는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희귀병은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우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그런 기우가 일어난다. 그것이 나에게는 실명으로, 신 목사에게는 루게릭으로 찾아왔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우리의 삶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나는 언제부터인지 아침마다 아내에게 신 목사에게서 무슨 연락이 없었느냐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더 이상은 말로 소리로도 대화할 수 없으니 신 목사의 근황을 유일하게 카톡으로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카톡을 못하고 신 목사는 말을 못하니 우리의 대화는 아내의 카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고 신 목사는 더 이상 소리를 내어 말을 할 수 없으니 전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아내의 카톡이 있어 신 목사의 근황과 하루하루의 삶을 듣고 함께 아파하고 기도를 한다.
나섬이 작은 공간을 만들고 첫 예배를 드린 지 벌써 24년이 되었다. 구로동과 뚝섬 시절을 지나 강변역 건물 지하에 우리만의 공간을 만든 날을 생일날로 정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어떻게 그 긴 날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를 고통과 감격, 눈물과 절규, 그리고 감사함으로 살다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앞으로 더 얼마나 살아야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야 하리라. 끝까지, 죽는 날까지 충성하라 하셨으므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산다. 그것이 전부다. 갑자기 신 목사가 생각난 것은 그 때문이다. 아프지만 죽도록 충성하라 하셨으니 죽는 날까지, 손가락에 힘이 다하여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에 눈빛으로라도 글을 쓰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우는 소리 웃는 소리라도 내어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우리의 존재방식은 다르다. 아프고 절망스러워 하루하루 죽을 만큼 힘이 들어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성의 의미를 새기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섬과 나, 그리고 신 목사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는 일등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끝까지 살아남는 삶을 살려는 것이다. 단 한숨의 숨이라도 쉴 수 있다면 끝까지 버티고 고통 속에 이를 악물고 눈물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끝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래서 신 목사에게 그렇게 살자고 말하려 한다. 우리 죽는 날까지 이를 악물고 살아내자고 말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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