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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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제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국회의원 선거유세로 시끄러울 때, 아내에게서 편지가 왔다. 

20일에 띄운 편지와 엽서를 한꺼번에 받은 뒤 아직 다음 소식이 없어 퍽 기다려집니다. 오늘도 시험을 보셨을 텐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원하시는 성적이 나와 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자기 두뇌가 명철하지 못하다고 자학하거나 성적 때문에 꿈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남아서 석사과정을 못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저는 그냥 빨리 오신다니 기쁘기만 합니다. 9월 2일에 귀국하신다면 오늘부터 꼭 96일이 남았는데 제대를 기다리는 군인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6월 20일 미시간 대학에 도착하여 숙소를 정하기까지 이제는 소식을 전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6월 2일에 또 시험이 있고 4일에 출발하셔야 하고 8월 28일에 하와이에 도착, 그리고 9월 2일에 귀국하시려면 짐도 꾸려야지, 부쳐야지, 여러 가지로 바쁘고 피곤하실 것을 생각하면 걱정스럽습니다. 일생에 다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본토 여행이므로 보람과 기쁨과 감사함으로 여행을 즐기십시오. 당신은 호기심이 많은 분이므로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곳 고등학교 선생들은 과로에 지쳐 병들이 나고 있는데 진단은, 휴양하라고 나온답니다. 전홍덕 선생이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어 미음만 마시고 살고 있는데 이건 신경을 너무 써서 생긴 병이므로 산에 가서 한 달만 쉬면 나을 것이랍니다. 김정락 선생도 목이 아프고 춥고 한다는데 이것도 쉬라고 한다지만 사회과목을 맡은 두 사람이 다 쉴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불편한 몸으로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김준태 선생은 지난 27일 퇴원했는데 매일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병원비도 4만 원이 넘어 모두 5만 원 이상을 썼답니다. 당신도 여기 있었다면 그 선생들 이상으로 일을 했을 텐데 하나님께서 뽑아 미국에 보내어 공부시키고 여행을 시키시니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도 건강에 유의하시며, 시간이 나시면 이분들에게 위로의 엽서라도 보내십시오. 

참 녹음해서 보내주신 테이프는 잘 받아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곳의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특히 배경 음악으로 넣어주신 하와이 음악은 퍽 아름답고 감미로웠습니다. 이국땅에서 울려오는 아리랑의 가락과 가야금 소리도 마치 내가 미국 땅에 앉아서 듣는 것처럼 애절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그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고생만 하다가 학위도 마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니 섭섭했습니다. 당신 룸메이트가 당신과 아이들을 많이 칭찬해주고 저에게도 정다운 목소리를 보내주어서 퍽 고마웠습니다. 어떻게 생긴 분인지 제가 궁금해 한다고, 또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 또한, 그의 여자친구 아이리스 양의 카드도 잘 받았으며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 일본말로 직접 내가 회답을 써볼까 생각도 했는데 워낙 오래 안 쓰던 일어이고 또 그녀의 일어 솜씨를 보니 좀 기가 꺾이었습니다. 

“この間は 黃い おさいふを 載きまして 有難う ございます. ほんとは そんなにまて して  下さらなかっても よかったのに すみません でしだ. 大變 きれいな おさいふなんで 大切に 使わせで 戴きます.(그 사이, 노란 지갑을 받아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합니다. 대단히 멋있는 지갑이어서 중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96일만 지나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떨리며 기다려집니다. 

67. 5. 29.

나는 아내의 편지에서 돌아갈 학교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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