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여는 말씀]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16일-

Google+ LinkedIn Katalk +

욥 6:1-13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4)”

엘리바스는 고난은 죗값이니 회개하라고 다그치지만, 욥은 아직 왜 내가 고난을 당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것임에는 분명하다고 항변합니다.(4) 엘리바스는 욥의 탄식을 분노라고 말하지만(1), 욥은 분노가 아니라 괴로워할 뿐이라고 말합니다.(1,10) 욥이 말한 고통을 저울에 달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무겁고(3) 화살이 박히고 독을 마시는 것 같고(4)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울겠느냐 소가 꼴이 있으면 울겠느냐(5) 내게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며 참겠는가(11) 하나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주께서 손들어 나를 끊어 버리시기(죽기) 바라는 고통을(8) 욥의 아내와 현장의 목격자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인들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섣부른 위로와 경솔한 엘리바스를 보기에 부끄럽습니다. 만일 욥이 엘리바스의 말대로 죄로 알고 회개했다면 자신이 당한 고난의 의미와 의로우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되었을 것을 욥도 간혹 흔들렸음을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야고보 사도는 신앙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욥의 인내를 배우자고 말씀하십니다.(약 5:11)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 속에 탄식하면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 욥을 봅니다. 욥의 신앙을 감히 예수님께 비교할 수 없지만, 고난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께서 상상할 수 없는 극한 고난을 앞에 두고 마지막 날 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하시며 십자가를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예수님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욥의 생각과 일치하고 있음을 보게 하십니다.  

비록 사탄이 주는 시련이지만 하나님의 허락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욥기의 강조점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섭리하는 세상에 악이 득세하고 의인과 선인이 오히려 핍박을 받고 눌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의문을 제기하며 탄식하는 것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박국 선지자가 그러했고(합 1:12-17)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러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요. 그러므로 왜냐(why)고 묻지 말고 어떻게(how)라고 물으라는 한 성경공부의 구호가 생생합니다. 욥이 ‘왜 내가 이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 수없이 묻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침묵하십니다. 예수님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들의 울부짖음에도 하나님은 끝내 침묵하셨음을 생각합니다.(마 27:46) 모든 것이 주께로 왔으니 주께로 돌아간다는 욥의 고백을 끝까지 붙잡고 욥기 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빛이 하나님으로부터라면 어둠도 하나님으로부터임을 믿습니다, 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고난도 하나님이 주셨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문제는 결핍과 고난이 아니라 풍요와 낭비 속에도 감사를 모르는 시대라 합니다. 5천 년 역사 가운데 이렇게 부유하고 평온하게 살아 본 적 없다는데, 정작 우리는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며 살아도 못다 할 인생 모든 것을 당연시하고 작은 것에 연연하여 원망과 불평했던 것을 참회하게 하소서. 이웃의 고통에 함께하는 겸허한 기도가 있게 하소서. 모든 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터득하게 하소서.  

김유수 목사

<광주 월광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