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11) 아브라함 링컨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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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필드로 옮겨온 지 몇 년 링컨은 주지사나 순회 판사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링컨은 철도회사, 은행, 금융회사와 관련된 소송, 특허신청, 형사소송까지 다루었다. 20년 후 그는 정치적 사건을 변론하면서 치밀함과 상식, 소송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일약 일리노이 주에서 가장 저명한 변호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링컨은 1855년 6월 특허권 분쟁 소송에서 변호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같은 측 에드윈 M. 스탠턴(Edwin M. Stanton) 변호사는 “발목까지 내려오지도 않는 바지를 입은 긴 팔 원숭이, 손잡이 끝이 동그란 공이 달린 파란색 목면 우산을 든 볼품없고 깡마른 꺽다리 촌놈을 왜 끌어들였느냐”고 공공연히 링컨을 무시했다. 

링컨이 자기의 신체에 대해 소개했다. 193cm의 키, 몸은 여위고 체중은 81kg 피부 빛은 캄캄한 편이고 거친 흑발에 눈은 잿빛이었다고 했다. 체격은 좋았으나 잘생긴 용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40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의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 출마했을 때 수염을 기르라고 편지한 소녀가 있었다. 이것도 그의 생김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진실한 사람으로 살았다.

링컨은 1861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을 무시해 온 정적 스탠턴을 전시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링컨은 스탠턴이 정직하고 엄격하며 원칙을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대대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공화당 내 분파의 지도자를 내각에 참여시킴으로써 당의 분파가 협력하도록 잘 조정했다. 이는 링컨 특유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영토나 인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장족의 발전했다. 독립할 당시 13개 주였으나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지방을 구입한 것을 필두로 플로리다, 텍사스, 오리건이 추가되어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게 되었다. 서부의 수많은 미개척지가 이주민들의 노력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영토로 편입되었다. 아울러 경제체제도 농업에서 공업 중심으로 변모해나갔다. 그래서 모두 새롭게 변화했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변화를 둘러싼 각종 이권경쟁도 복잡해졌다.

당시 강력한 정치 세력은 남부의 대농장 지주들이었다. 노예를 부려 대농장을 경영하는 지주들은 미국의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을 대항하는 신흥 세력들은 북부와 동부에서 형성된 산업 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의 표면적인 대립은 노예제도였다. 1619년 아프리카 흑인들이 버지니아에 처음 수입되면서 흑인 노예는 남부의 농장을 운영하는 데 필수 불가결의 노동력이 되었다. 특히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갈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면(綿)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흑인 노동자가 필요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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