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천년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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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것은, 새해에도 오미크론변이 등으로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에 새로운 위로와 희망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을 새롭게 전시한다는 보도를 듣고 반가사유상의 그 고졸한 미소가 마음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오래전 필자는 일본의 국보 1호라고 하는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수년 전 마침 교토에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그 불상이 전시되고 있는 광륭사에 어렵사리 찾아갔지만, 하필 그때는 비공개 중이라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기억이 마음에 남아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이 불상을 보고는 이렇게 극찬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시간적인 것, 속박을 넘어선 인간존재의 가장 정화된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의 마음의 영원한 평화와 이상을 실로 아낌없이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목조불상은 한국에서 제작된 것이 거의 확실하고 또 한국에 있는 금동불상과도 너무나 닮아 있어서 이 목조불상에 대한 야스퍼스의 평은 바로 한국의 반가사유상에 대한 평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새해 첫날 반가사유상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게 된 것이리라.

박물관 2층 넓은 공간에 사유의 방이라 이름을 붙인, 새롭게 단장한 전시실에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우주공간을 연상시키는 영상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신비로운 세계로 이끄는 구성이 흥미롭다. 두 작품이 각각 6세기와 7세기 경 삼국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1400여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두 불상은 그 예술적 가치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그 얼굴 표정과 잔잔한 미소에서 발견하는 한국인의 마음의 원형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평범한 한국인의 용모에 평화롭고 온화하게 마음속 깊은 곳을 응시하는 눈빛과,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기쁨에 겨운 듯한 잔잔한 미소 앞에 서 있노라면, 어느새 지나간 수천년의 세월 동안 우리가 겪어온 온갖 풍상과 고뇌가 말끔히 치유되는 듯한 신비로운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상 가장 융성하는 정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류열풍으로 온 세계가 한국의 문화에 매료되고 열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앞의 현실은 밝지 않고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고 어두운 것은 왜일까. 코로나19가 벌써 3년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우리의 정치현실 또한 암울해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경쟁하는 후보들이 모두 도덕적 흠결만 보이고, 정책비전으로 희망을 약속하기보다는 비방과 불신이 난무하는 정치 행태에 국민들은 좌절과 절망감을 느낀다. 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있고, 사람들의 정서는 거칠어져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표면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전 불상에 나타난 미소와 같이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깃든 평화를 사랑하는 심성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한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바로 이 심성이 있기에 또한, 전래된 지 백여년에 불과하지만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기독교 문화가 꽃피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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