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성령의 통로’를 확보한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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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직 성령으로! 한국교회가 발견한 생각의 통로

최근 필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제25-26대 회장 전광훈 목사가 「생각의 3가지 통로」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일련의 설교 시리즈를 유-튜브에서 접한 일이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공산주의로부터 지킨다’는 것을 목적으로 1989년 출발한 한국교회의 명실상부한 대표 기관이다.

전 목사의 이 설교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장 22-25절과 2장 10절 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전 목사는 생각의 3대 통로로서 첫째, 지혜를 추구하는 헬레니즘과 둘째, 표적을 추구하는 헤브라이즘 그리고 셋째,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이성에 근거한 헬레니즘의 철학과 감성에 근거한 헤브라이즘의 종교는 인본주의이다. 이 둘에게서가 아니라 신본주의 곧 계시에 근거한 오직 성령으로의 십자가의 길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참된 생각의 통로임을 전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확인, 역설하고 있다.

2. ‘성령의 통로’와 1907년의 한국교회

한국교회사에서 볼 때, 1895년의 한국 교회와 1905년의 한국교회는 무엇이 한국이 취해야 할 참된 생각의 통로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 선교는 1884년에 시작되었다. 선교 초기의 한국교회는 개인적이요, 경건주의적인 신앙이었다. 그러던 것이 1895년의 한국교회는 애국충군(愛國忠君)의 교회로 불릴 만큼 예수 믿는 것과 애국하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1905년의 한국교회에 가서는, 특히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비정치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대 부흥 운동에서 교회의 실천이란 자고로 신앙의 불길이 먼저 타오른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라는 절차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895년에 나타난 애국충군의 교회 안에 반드시 신앙과 연결되지 않은 행동과 실천이 섞여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성령의 통로가 아닌, 이성과 감정, 철학과 종교의 인간 중심적 통로가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에 반해, 1905년의 한국교회는 한국이 마땅히 취해야 할 생각의 통로로서 성령의 통로를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기를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사실을 기억한다. 오직 성령으로! 성령의 능력이 임하고 나서야 교회의 행동과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을 1905년의 한국 교회는 깨닫고 있었다.

류금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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