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포럼] 군번 없는 영웅, 지게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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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면서도 현역 군인과 함께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민간인 부대가 있었다. 일명 ‘지게부대(A-Frame Army)’이다. ‘지게’의 생긴 모양이 영어의 알파벳 A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미군들이 그렇게 불렀다. 정식 명칭은 ‘노무인력부대’이다. 우리나라는 70%가 산악지대여서 탄약과 식량 등 보급물자를 실은 차량이 고지를 오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중 탄약은 필수인데 방어전투 때에는 탄약을 여유있게 준비해 두어도 모자라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적은 물밀 듯 공격해 들어오는 데 탄약이 떨어지면 어찌되겠는가. 또 차량이 못 올라가는 높은 고지에서는 결국 군인들이 직접 탄약을 운반해야 되는데 그 일을 대신해 준 사람이 지게부대 요원들이다. 이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까지 탄약을 운반해 주었다. 군인이 아니었으므로 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다. 병력의무가 지난 35세 이상의 남자들에게 부여한 징집제도였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오직 애국심 하나로 전투임무에 동원되었을 뿐이다.

이 제도는 1950년 8월부터 유엔군의 요청으로 지게부대가 운용됐다. 대통령령으로 군 징집 대상에서 벗어난 35~60세까지의 제2국민병들을 징집해 노무자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사단별로 관리했지만 1951년 6월에는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한국노무단(KSC)을 창설해서 통합 관리했으며, 총 3개 사단과 2개 여단 규모로 편성됐다.

그러나 군인이 아니었으므로 희생이 돼도 적절한 예우를 받지 못했다. 한 사람이 매일 평균 45㎏의 짐을 지게에 지고 50∼80리씩 걸어서 운반했다. 매일 중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쌓였다. 또 산에 오를 때는 보급품을 지고 가고 내려올 때는 부상병들을 옮기는 역할도 했다. 그 외에 진지공사·도로공사·교량보수 등도 이들의 몫이었다. 전쟁 기간에 동원된 노무자는 총 30만 명이나 됐다. 이들은 험난한 산악지대였던 춘천·화천·평강·인제·속초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이들은 군인은 아니었지만 급할 때는 총을 들고 싸우기도 했다. 만약 이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작전에 큰 지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James Van Fleet·1892~1992) 장군은 만약 노무부대가 없었다면 미군 병력을 10만 명이나 더 증원했어야 했을 것이라며 이들의 공을 치하했다. 워싱턴 DC의 ‘한국전쟁기념공원’에는 노무자들이 탄약을 운반하는 모습도 함께 새겨져 있다. 그만큼 그들의 역할이 컸고 공로가 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들 노무단은 흔히 ‘보국대’에 끌려간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급품을 져 날랐다. 군복을 받은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민간 복장 그대로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희생자도 많았다. 전사 2,064명, 부상 4,282명, 실종 2,448명 등 9,000명이나 희생됐다. 철의 삼각지대라고 부르는 평강·김화·철원 지구 전투에서 노무자들의 눈물겨운 희생 장면을 목격한 종군기자는 목격담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군 포진지에서 탄약 부족을 느낄 때 생사를 가리지 않고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는 지게부대의 신뢰도는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평강전투에서 포탄이 떨어져 공격을 중지해야 할 경우가 생겼는데, 본부에서 지게부대에 긴급하게 포탄을 운반해 달라는 연락을 취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지게부대는 상황의 긴박성을 인식하고 일시에 400명이 동원돼 1인당 20~30㎏씩 짊어지고 50리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40리를 1시간 반 만에 달려갔을 때, 포진지에서도 마중을 나와 이들은 결국 2시간 만에 포탄을 보급했다. 5시간 거리를 2시간으로 단축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포탄이 신속하게 보급된 덕분에 중공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역습으로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그 공로로 지게부대원 400명 전원에게 부대장의 표창이 수여됐고 환희에 넘치는 표창식이 거행됐다.」그러나 이들이 임기를 마치고 귀향할 때 받은 것은 ‘징용 해지 통지서’와 종군기장, 기차표가 전부였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애국심 하나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지게부대!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다. ‘군번 없는 영웅’ 그들의 공을 절대 잊지 말자.

배영복 장로<연동교회>

• 베트남 선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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