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물음표(?)와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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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 머리(두뇌/IQ) 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노벨상을 받지 못한 점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보다 머리가 좋지 못한 유대인이나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받는데 비하면 아무래도 비정상적이라 하겠다. 노벨상은 기억력이나 이해력이 아니라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이 있어야 받는 것이다.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지혜(Wisdom/메타 지식)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평범한 현상을 꿰뚫어 봄(insight/통찰)으로써 내면에 감춰진 비범한 원리(또는 섭리)를 깨달아야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힘과 질문하는 습관을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의 두뇌집단이지만 평범한 결과 기껏해야 모방하기(흉내내는 것)나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유롭게 세상을 보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춤추게 해야 한다. 걸음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발을 옮기는 것이지만 춤추는 것은 즐겁고 신나서 온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교육(중·고교)에선 ‘시험 기계’란 말이 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선생님이나 남이 가르쳐준 대로 외우기만 하니까 재미도 없고 응용력도 안 생기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을 수도 없는 것이다. 스스로 하기보다 지시와 명령과 부탁을 받아야만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이제부터 생각을 춤추게 하라. 그리고 우리의 삶은 춤을 추듯이 살자. 이 세상 삶이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지 한번 경험해보자. “?” 이것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가? 물음표다. 가만히 그 생김새를 보면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같지 않은가? 꼭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나? 생각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더 깊고 중요한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처럼 ‘인간은 왜 태어나서(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 걸까(死)’를 생각하든지 아이작 뉴턴처럼 ‘왜 사과는 나무에서 분리되면 땅으로 떨어지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물음표(?)에서 종교가 생겨나고 과학이 싹트고 예술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그냥 스쳐가는 많은 것들에 대해 끝없이 물음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물음표(?)를 붙여 보면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것들이 우리 앞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지성)에다 가슴으로 느끼는 느낌표(!)도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놀라서 펄쩍 뛰어 오르는(춤추는) 모양의 느낌, 공감, 감사, 감격, 감동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물음표(?)는 의문을 뜻하는 라틴어 ‘QUESTO’에서 느낌표(!)는 감탄할 때 나오는 ‘IO’를 줄여서 만들어진 기호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왕래하며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뤄 ‘자아실현인’이 되고 그 후에 사회(남)를 위해 나누고 섬기는 ‘사회봉사인’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Fully functioning person) 이런 아이디어는 2022.2.26. 89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능소(凌宵) 이어령(李御寧) 박사께서 <생각 깨우기>란 어린이 창의성 교재에서 강조한 것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의 조각작품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청소년들의 창의성 계발 교육의 상징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하부르타 교육으로 성공하는 유대인들의 ‘밥상머리 교육’(아버지 교육)과 ‘베갯머리 교육’(어머니 교육)을 우리나라 자녀 교육에도 철저히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타일랜드(태국)의 영재학교를 가보니 복도에 분야별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판넬로 게시해 놓고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로 자기 자신을 예정해 놓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중‧고교 복도에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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