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시부모(媤父母)님의 사랑

Google+ LinkedIn Katalk +

5년이 지난 후 아버님은 고등학교 교장님으로 재직하시면서 회갑(回甲) 잔치를 눈 앞에 둔 어느날 하늘나라로 떠나시어 우리와 슬픈 이별을 하게 되었다. 눈물로 아버님 장례식을 마친 후 살림을 정리하시며 슬퍼하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오면서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렸다. 어머님께서는 아버님 퇴직금을 우리의 집 마련을 위해 모두 내놓으셨다.

육군사관학교 근처 봉화마을(현재 목동)에 대지 90평에 건평 20평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3년도 살지 못하고 장로님이 빚보증의 책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집을 팔게 되었다. 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그때는 어머님의 깊은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가슴 아파하셨던 어머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다.

수년에 걸쳐 원금을 조금씩 푼돈으로 돌려 받기는 했어도 높은 이자로 인해 남은 것도 없고 고생을 많이 했다. 닮고 싶은 어머님! 인자하시고, 성품도 좋으시고, 미인이시며 살림도 정갈하게 잘하시고 인정도 많으시며 자식에 대한 정성이 남다르신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나는 어머님에게서 재래 음식과 살림과 자녀들을 위한 정성과 사랑을 많이 배웠다. 어머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어머님 같이 살아가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러나 어머님보다 17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았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이후에 하늘나라에서 어머님을 만나면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꼭 손잡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늘나라에서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아버님! 어머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 큰 며느리 올림 –

백합가족회

장로님과 나는 1955년 4월 9일 결혼을 했다. 결혼하던 해인 1955년 원동윤 아버님께서 정직(正直), 근면(勤勉)으로 제정해 주셨다. 삶에 있어서 항상 정직하고 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근면하게 살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아버님의 가르침을 받은 남편 4형제 가족들의 일생이 담긴 백합가족회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백합가족회 발족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후 아버님께서 항상 백합화처럼 우아하고 순결함을 강조하시며 이 험한 세상을 잘 이겨나갈 것을 당부하셨기 때문에 형제들이 1965년 4월 10일 형제들의 모임을 발족하여 백합가족회라 칭했다. 처음에는 원세환, 원장환 사촌 형제도 회원이었었다.

백합가족회 1회 모임

1965년 4월 10일 1회 모임이 있었다. 기록에 참석자는 원익환 함명숙, 원시환 임영순, 박순목 원은환, 원진환, 원세환, 원장환 9명이었다. 곧 있을 시아버님 회갑을 준비해서 형제들이 모여서 양복점에서 양복과 코트를 맞추고 파라마운트 영화도 보고 가족회를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 다음 날! 4월 11일.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고 형제들이 화천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시아버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신 후였다. 회갑을 준비하던 형제들이 마음의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슬픔으로 장례를 마쳤고 혼자 남으신 시어머님을 큰아들인 우리집 육사 9호관사로 모시고 왔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