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어린이날과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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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방정환이 이끄는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에서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이듬해인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 어린이날의 효시(嚆矢)이다. 그러므로 금년은 100회째(99주년)의 ‘어린이날’을 맞는다. 이에 조금 앞서 1923년 3월 16일,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이 주축이 되어 일본, 도요(東洋)대학 미술과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조직이 되었는데 방정환 등 ‘색동회’ 회원들은 ‘어린이’를 큰 가치로 여겼고, ‘어린이’를 기리는 날을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린이의 순수함과 꿈, 그리고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야 일본 압제와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깊은 뜻도 간직하고 있었다. 1919년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 뜻에서 자주 모임이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방정환이 있었다. 일본을 이기려면 어린이를 존중하고 육성하는 일이 먼저라고 그는 외쳤다. ​왜색 짙은 노래와 어느새 범람해서 자리를 틀고 있는 일본말을 차단하기 위해 우리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은 이가 또한 방정환이었다. ​

그래서 내놓은 대표적인 단어가 ‘어린이’라는 우리말이다.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쓴 이도 역시 방정환이었다. 그는 나이 어린 유소년(幼少年)을 ‘어린이’로, 그리고 청년과 중년을 ‘젊은이’로, 장년과 노인을 ‘늙은이’로 나눠 써야한다고 계몽했다. 방정환이 어린이를 귀하게 키워야한다는 주장과 배경 뒤에는 손병희(孫秉熙, 1861~1921) 선생의 영향이 지대했다. 손병희 선생은 충북 청원출신으로 1919년 3.1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이자, 천도교 3대 교주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늙은이’라는 말이 마치 노인을 하대(下待)하는 것으로 시비가 생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우리말임을 고집한 방정환은 ‘어린이’의 상대어(相對語)로 ‘늙은이’란 말을 썼던 것이다. ​

방정환은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가 되어 장인, 손병희 선생의 항일운동을 답습하였다. 손병희 선생은 22살 때 평등사상을 내세운 동학에 입도(入道)하여 제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을 만나 천도교 창시자인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전개했다. 이때 ‘신원(伸寃)’이란 “원통한 일이나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풀어버림”을 뜻하는 말로 동학대표 40여 명은 ‘척왜척화(斥倭斥和: 왜국을 배척하고 그들과의 화친도 배척함)’를 내세우며 왜정에 항거하는 본격적인 시위운동을 벌여나갔다. 

 손병희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함양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임을 알고, 모든 것을 교육에 집중했다. 방정환은 장인 손병희 선생의 3.1만세운동을 익히 목격하고, 조선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달렸다고 판단했다. 방정환은 어린이의 인권의식을 기르고자 1923년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란 선언문 중에 “어린이에게 경어(敬語)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대하여 주시오”라는 당부의 말이 들어있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중을 부탁한 것이다. 

방정환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여보, 내가 왜 호(號)가 ‘소파(小波)’인지 아시오? ‘작은 파도’ 즉 ‘잔물결’이란 뜻이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 물결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오, 훗날에 이 작은 물결 즉 “소파(小波)”가 큰 물결 “대파(大波)”가 되어 출렁일 테니 당신은 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주시오.”

1931년부터는 일본 조선총독부가 5월 1일을 ‘유아애호주간(幼兒愛好週間)’으로 정하고 어린이날 행사의 주도권을 빼앗아가면서 어린이의 존중이 아닌 “육체의 건강”을 내세우며 어린이의 노역(勞役)을 합법화했다. 방정환의 어린이날 행사는 끊길 위기에 놓였으나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다시 살아났으며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었고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명시했다. 이어서 1970년 공휴일로 지정된 이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201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의 비공휴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고, 이 나라의 미래이며,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어린이가 활기차게 뛰노는 가정, 어린이가 많은 나라, 어린이가 말씀으로 양육되는 교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 참으로 소중한 우리의 과제이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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