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백합가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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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가족회 계속된 모임

백합가족회는 매달 어김없이 모였다. 주최는 회원이 돌아가면서 했고, 장소와 비용도 주최측이 제공하는 것으로 했고, 외부 손님도 초청할 수 있었다.

기억에 많이 남는 주요 모임들이 있다.

 1967년 9월 28일 시어머님 회갑을 육사 9호 관사에서 축하했다. 1976년 12월 우리의 버팀목이 되셨던 시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1980년 6월 6일 사촌 형제 원세환, 원장환 가정이 분리되었다. 1994년 5월 10일 백합가족회원 원은환 권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1998년 11월 22일 백합가족회 400회 모임을 가졌다. 400회 모임 축하예배는 1999년 1월 1일에 아시아 신학대학 총장이셨던 임택권 목사님을 모시고 세종호텔에서 가졌다. 1965년에 시작해서 2021년까지 604회에 걸친 모임을 가졌다.

백합가족회 회원들과 함께한 세월

남편과는 22세에 결혼하고 66년을 함께 하고 있다. 시아버님과 10년, 시어머님과는 21년을 함께 했다. 시동생 원시환 장로님과는 66년, 임영순 권사와는 59년을 함께 하고 있다. 박순목 장로님과는 60년을 함께 하고 있고, 시누이 원은환 권사와는 39년을 함께 했었다. 원진환 장로는 66년, 김성심 권사와는 53년을 함께 하고 있다.

육사 9호 관사에서 가족회원들과 함께했던 역사

1958년에 남편이 육사교수로 발령 받은 후 처음 1년은 청량리, 2년은 회기동에서 살았고 1961년 육사 9호 관사에 입주하였다.1962년에 원시환 장로님과 임영순 권사와 결혼을 하고 9호 관사에서 우리와 함께 몇 달을 지낸 후 분가를 했다. 시누이 원은환 권사는 당시 육사 교수였던 박순목 장로와 1961년에 결혼을 했다.

원은환 권사가 공립학교인 서울 봉의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나 도시에서만 오래 있을 수 없는 제한사항이 있어 결혼 2년 후 시골로 전근이 되었다. 이때에 남편인 박순목 장로가 같이 갈 수가 없어 이삿짐을 가지고 9호 관사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 막내 시동생인 원진환 장로는 1963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우리와 함께 살았다.

원진환 장로는 1968년에 김성심 권사와 결혼하고 우리와 함께 살면서 김 권사는 교직 생활을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시동생 원진환 가정이 분가를 했다. 

시아버님 떠나신 후 시어머님께서 9호 관사에서 우리와 함께 4년을 사셨고, 1969년에는 막내 동서 김성심 권사가 해산할 때가 되어 시어머님께서 막내아들 집으로 가셔서 영실, 영석 두 손주를 돌봐 주시면서 7년을 지내시게 되었다.

시어머님과 이별

막내 집으로 가신지 7년 후 1976년 11월에 시어머님의 말씀이 ‘내가 아무래도 큰아들 집에서 살다가 죽어야 할 것 같다’고 하시며, ‘내년 초에는 오시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세요’ 대답은 하면서도 애지중지 돌봐 주시던 영실, 영석이를 떼어 놓고 오시겠다고 말씀을 하시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 한 달이 지난 12월 4일! 내년 초에 오시겠다던 시어머님께서 오시지도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마도 시어머님은 떠나실 것을 예측하셔서 그런 말씀을 나에게 하셨던 것 같았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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