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뒷맛이 좋은 선, 뒷맛이 나쁜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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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소설가 헤밍웨이는 대어를 낚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그 외에도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선과 악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선이란 무엇인가 뒷맛이 좋은 것이다.” 이 정의는 짧고도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을 준다.

우리는 선을 베풀 때 마음이 즐겁고 흡족함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악을 행할 땐 마음이 무겁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큰 것을 베풀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의 작은 사랑과 선을 베풀 때조차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거기에서 인생의 긍지와 만족감을 갖게 되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보람과 즐거움이 넘친다.

나는 매년 한 번씩 미국을 방문하여 이곳저곳에 가서 설교를 한다. 그러면 어떤 교회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곳도 있고, 반대로 여유가 없는 교회도 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보다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교회가 많다. 나는 일생 동안에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고 어려운 교회에 가서 대가 없이 설교를 함으로써 선을 베풀었다. 그럴 때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여겨지는 나 같은 목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쁘다. 그렇게 베푼 후에는 그 이상의 보상으로 채워 주셔서 앞 못 보는 이들에게 생명의 빛을 찾아줄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헤밍웨이는 선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뒷맛이 좋다고 한 것이다. 뒷맛이 좋다는 말은 선을 베푼 후에 갖게 되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말한다.

 헤밍웨이는 이와 반대로 “악이란 무엇인가 뒷맛이 나쁘고 상쾌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악한 일을 하면 마음도 평안하지가 않고 양심에 가책도 느끼게 된다. 악의 결과는 언제나 쓴 맛이다. 선악과가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하였지만 그 결과는 에덴에서의 추방이며, 인생의 고통이며, 죽음이었다. 악은 언제나 인간에게 달콤하게 다가와 씁쓸하게 끝난다. 그래서 사회에 큰 악을 끼친 범죄자들은 한결같이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이수해야 할 학과목이 14개나 되었기 때문에 그중에는 취미가 없는 교양과목도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성경과목을 싫어해서 노트필기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장차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 성경 과목은 열심히 했다. 시험 때가 되면 ‘내가 성경시험 답을 알려 주고 도와줄 테니 자연과학시험 답을 알려주고 도와 달라’고 하면서 학생들끼리 서로 담합을 했다. 그래서 시험을 볼 때 맨 뒤에 앉아서 몰래 답을 불러 주었다. 소위 요새 말하는 커닝이었다. 시험 시간에 뻔뻔스러운 부정행위를 예사로 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설교를 할 때 양심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면 시험을 치던 그때의 일이 악몽처럼 떠올라 편하지가 않다. 그때 시험 점수는 몇 점 더 받았을지 몰라도 뒷맛이 쓴 것이다. 이것이 헤밍웨이가 말하는 뒷맛이 나쁘다는 것이다. 악한 일을 하면 자기혐오와 자멸감을 느끼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괴로운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는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선악을 판단한다. 행동적 문학인이었던 헤밍웨이는 문학인답게 뒷맛이 좋으냐, 나쁘냐를 가지고 판단했다. 그것은 선악의 직감적 판단이다. 선한 일을 하면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기쁘지만, 악한 일을 하면 얼굴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괴롭다. 왜냐하면 선한 일은 뒷맛이 좋고, 악한 일은 뒷맛이 나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한평생 뒷맛이 좋은 선하고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뒷맛이 좋아야 참 맛이 좋은 것이다. 음식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그럴 때 보람과 기쁨과 행복이 넘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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