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한국 호스피스 개척자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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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희(64) 목사는 본래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가 중앙대학교(약학과)를 졸업하고 ROTC 장교로 판문점 의무장교로 근무 중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이 있었다. 대 낮에 미군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 그후 운동을 하다가 고관절이 파열되어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군종사병이 방문하여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려 감동을 받아 고통과 아픔이 사라져 병은 약과 의사의 치료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제대 후 영등포에 신세광약국을 인수하여 돈을 많이 벌었으나 폐결핵에 걸려 치료가 되지 않아 생명의 한계에서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36세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42세에 목사가 되어 서울 고덕동에 있는 한영고등학교 교실을 빌려 ‘한영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는 폐결핵으로 죽음을 앞에 두었음에도 호스피스를 한다는 결심을 되살려 1996년 경기 용인시 고안리에 ‘샘물호스피스병원’을 대지 7500평에 시작하여 23년간 운영하여 왔다. 지금까지 거쳐간 수가 7946명으로 모두 원 목사님이 마지막 기도로 운명시켰으며 그의 직업은 사자가 넷으로 약사, 목사, 기사, 장의사다.

샘물호스피스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7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참석하여 전도가 되고 있다. 

현재 호스피스 60병상, 에이스 10병상, 기타 합하여 100병상이다. 입원을 하려고 대기자가 121명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비용은 하루 2만 원. 환자 가족도 무료로 식사를 한다. 처음에는 전부 무료였으나 의사, 간호사, 직원의 비용과 그리고 법적으로 본인부담이 되어있다. 운영금은 후원금으로 충당하며 현재까지 운영비가 500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현재 부채가 9억5000만 원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운영해 왔으며 앞으로도 믿음으로 계속할 계획이다. 샘물호스피스를 운영하면서 수의(壽衣)에는 원래 주머니가 없으나 어떤 이는 복주머니에 돈을 넣어 달아주는데 화장장 인부들이 슬쩍 뺀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좋은 죽음이 중요하나 좋은 삶으로 끝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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