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여는 말씀] 엠마오의 두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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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13-35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13-14)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5-16)”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충격적인 사건은 믿고 따랐던 두 제자가 크게 실망하고 옛 삶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이들을 찾아 친히 동행하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그들 마음의 상실이 크고도 컸나 봅니다. 주님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시며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한 것을 더디 믿는 자라(25) 책망해도 깨닫지 못한 인간의 둔함을 보게 하십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16) 아무리 말씀을 듣고 보아도 깨닫지 못한 인간과 한계를 보게 하십니다. 깨달음이란 말씀과 성찬과 성령님의 도우시는 은혜로만 가능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코로나로 공동체 예배는 물론이며 성찬식의 떡과 잔을 집례자가 손에 들고 회중은 눈으로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으로 진행된 성찬식이 국가적인 방역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날이 또 올까 정말 두렵고 속상합니다.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는 부활의 증인으로 나선 여인들과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머뭇거리고 있는 제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비록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위기에 매우 발빠른 적극적인 자세를 보게 합니다. 동일한 사건에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에 갈등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망설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던 마음을 빨리 정리하고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떠나는 두 제자를 찾아 동행하며 대화하시며 식사 자리까지 함께하신 주님의 모습에 참으로 놀랍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왜 낙심하며 옛것으로 돌아가느냐 빨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라 다그치지 않고 성경을 풀어 증언하시며 스스로 깨달아 선택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신 주님의 마음과 방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급한 제자들과 주님의 여유로운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일이라 가르침과 선교와 섬김이라 하여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교훈으로 삼습니다. 실망과 낙심의 자리에 함께 하시며 공감하시며 대화로 소통하며 변화시킨 주님의 탁월한 양육의 방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부활 신앙은 역사적인 한 사건으로 다가 아니고 살아 계신 주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하심을 믿는 것이 참신앙인 것을 터득하게 하고 동행이란 말씀과 성찬(예배)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는 것과 절망의 엠마오에서 부활의 자리로 부활의 자리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 부활 신앙인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죽음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고 소소한 일에 무덤을 만드는 불신앙의 자리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신 부활 신앙으로(32) 증인의 삶의 자리로 다름질 치게 하소서. 믿음 없어 불안하고 사랑 없어 공허하고 하나임에도 하나되지 못하고 때로는 적대시하며 서로 남 탓하는 살벌한 세상이여, 새천년 이십 이년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거짓된 모든 것 다 버리고 남은 길 주님과 함께 동행하게 하소서.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신앙은 지식을 넘어 인격적인 만남이요 체험인 것을 깨닫게 하소서.

김유수 목사

<광주 월광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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