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영] 나의 이름은 아버지이고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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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친밀감 소속감으로 결집된다. 친밀감 소속감이 전통적 가족문화에서 가족 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달라졌다. 가족들도 따로따로 하는 핵가족의 시대이다. 끈끈한 연결고리가 풀려 버렸다. 

자살대교라는 마포대교에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다리조형물이 있다. 그곳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아들의 첫 영웅이고 딸의 첫사랑인 사람 아내의 믿음이고 집안의 기둥인 사람 당신은 아빠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있다.

압축경제발전 과정에서 자기이름이 아빠이고 남편인 것은 잊었다. 가족과 친밀감도 없었다. 가족 간 소속감 마저도 없으니 혼자이고 외롭다. 그것이 문제이다.

“나의 이름은 남자입니다”라는 편향된 시각이 있다. 남자는 그래도 되는 줄로 착각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기다려도 일이 있으면 늦어도 되는 줄 알았다. 아이 생일날은 기억하지 못해도 친구와 한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야 한다. 그것이  의리 있는 사나이인 줄 알았다. 가정의 소소한 즐거움보다는 직장과 조직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보니 “나의 이름은 아버지였습니다.”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길, 다정한 말 한 번 건네주길 바라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남편이었다. 아내는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을 함께 먹어주고 밖에서 있었던 일을 소곤소곤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그런 남편이길 바랬다. 환갑을 앞둔 지금에서야 내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커서 내 곁을 떠났다. 아내 역시 나보다는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게 남은 것은 회한에 찬 고백이다. 좀더 일찍 나의 이름을 알았더라면… 좀더 멋진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되었을 텐데…. 한 가장의 눈물겨운 고백이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많은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남편, 아버지가 되는 방법을 배운 일은 없다. 단지 뿌리 깊은 유교문화 속에서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것만 배웠다. 어느새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식의 나침판’이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대부분 가정보다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일수록 일이 삶의 전부이다. 일에 몰입되어 살다보니 하늘이 무슨 색인지 흐렸는지 맑았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자녀도 아내도 안보였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니 가족이나 아내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자녀들도 아빠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빠, 바빠, 나빠”라고 한다. 한 초등학생의 글이다. 

‘엄마는 나를 보살펴 줘서 좋다. 냉장고는 나에게 먹을 것을 주니까 좋다. 강아지는 나와 놀아줘서 좋다.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저 재미로만 듣기엔 씁쓸함이 남는다. 냉장고나 강아지보다도 못한 것이 오늘날의 아버지상이다. 기가 막히지만 이것이 단순한 풍자가 아닌 현실인 것이다.

일에 쫓기는 동안 가족끼리 눈동자 맞추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소 닭 보듯 한다. 부부라고 하지만 한 공간에 살 뿐 감정의 교감이 없다. 물리적 결합일 뿐 정서적 교집합이 없다. 대화도 적다. 마치 ‘결혼한 Solo’ 처럼 살아간다.

내 자리는 가정에서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그 역할이 서투르고 부족했다. 남자들이 가정에서 회복 탄력성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순기능을 해야 한다.

두상달 장로

• 반포교회 

• (사)인간개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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