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예수님의 동기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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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빙의 맥아더 거리에 이사한지 얼마 안되어 송 목사 내외가 심방을 왔다. 오면서 풀 사이즈 매트리스를 승용차 위에 싣고 왔다. 매트리스를 싣고 온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아마 경찰이 보았으면 벌금을 물렸을지도 모른다. 매트리스를 승용차 위에 매달고 오면 풍속이 가속되어 차가 휘청거리고 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매트리스는 새것도 아니었으며 그들도 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런 매트리스를 스스럼없이 줄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우정으로는 설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얼룩진 매트리스를 받을 때 감개가 무량했다. 침대가 없으면 양탄자 위에 매트리스라도 깔아야 한다. 이런 배려는 가난하게 살아 본 사람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고 이 사랑의 행위는 우리가 무엇이나 이해하는 동지라는 생각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의 우정 사이에 무엇인가가 하나라도 끼어서 주고 욕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이런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그보다도 내가 기뻤던 것은 내게도 목사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권위를 내세우고 거드름을 피워도, 또 설교를 잘못해도 한 마디도 충고할 수 없이 듣고 있어야만 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그런데 이 목사는 내 친구여서 할 말을 할 수 있는 처지였다. 우리는 옛날 한 학교의 동료 선생이었던 목사 내외를 만나서 정말 기뻤다. 그들은 이민 목회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으레 공항에 마중을 나가야 하며, 자기 집은 손님들의 임시 숙소라고 말했다. 이민 온 사람들의 아파트를 찾아 주는 일, 집 사는 것을 돌보는 일, 사업 상담, 개업 예배, 심지어는 건물 청소 자리까지 찾아 주는 것이 이민 교회의 목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날은 길에서 차가 섰다고 전화가 와서 곧 가겠다고 말은 했으나 교회 일이 밀려 이일 저일 처리하고 있었더니 다시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짜증을 내는 교인도 있었다고 했다. 주중에는 모두 자기 일이 바빠 시간을 내어 도와줄 사람이 목사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중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시종 싱글벙글했다. 늦게까지 심방을 다니다 돌아오면 애들은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잠들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섬긴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이 기쁜 마음을 누가 주었는가? 예수님이 동기 부여를 하면 다른 모든 일에 이 동기가 앞선다. 그는 예수님을 본받고 섬기는 삶을 사는 목사였다. 예수는 우리가 닮아가려 하는 모범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은 예수보다도 우리 곁에 있는 지도자의 모습에서 더 많은 모범을 본다. 우리도 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시시각각 하며 자기의 삶을 반성한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는 애들을 위해 거의 의복도 장난감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인들이 헌 옷을 많이 갖다 주며 또 크리스마스 같은 때는 교인들이 자기 애들 선물을 고를 때 꼭 자기 자녀들도 생각하고 새 옷이나 장난감을 사서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치 긴 젓가락만 있는 천국에서 자기 입에는 넣지 못하고 남의 입에만 서로 음식을 넣어 주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남을 위해 살며 자기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으로 산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교회의 요식행위를 많이 싫어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는 새벽기도로 시작해야 한다든가, 기독교인은 술 담배는 입에 대서는 안 된다든가, 십일조를 안 하고 하나님의 돈을 도둑질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랜싱에서 아내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내가 학생이라고 $1짜리 헌금을 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매우 놀라며 나를 꾸중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요식행위는 스스로를 훈련하는 막대기임을 깨달았다. 기전학교에서 술 담배를 안 하던 내가 랜싱에서처럼 술 담배를 한다면 나는 분명 이중인격자였다.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요식행위도 따르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야 한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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