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사랑과 청빈의 목회자 황광은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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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삶,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신 목사님!  

김희보 목사 저서 ‘人間 황광은’ 연재에 즈음하여 

우신(牛臣) 황광은 목사님은 영암교회에서 생의 마지막 10년을 심혈을 기울여 목회하시다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만 47세의 일기로 1970년 천국으로 가셨다. 소천하신지 52주기를 보내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3년 2월 19일(주일) 오후 3시에 영암교회(유상진 목사)에서 기념예배를 계획하고 있다.

금번 한국장로신문사에서는 그분의 훌륭한 삶과 정신을 인정해 그분의 일대기 연재에 협조해 주셨다.

황광은 목사님은 1923년 2월 25일 평북 용천에서 3대 기독교가정에서 출생하셨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고아와 거지들의 벗이 되기를 즐겨해 몸소 사랑과 경건의 삶을 닦아 오시다가 1939년 2차 대전이 시작될 무렵 열여섯 소년의 나이에 성프랜시스를 동경해 부모를 떠나 단신 서울로 상경했다. 

삼각산 기슭에 있는 향린원(고아원)에 몸을 담고 향후 8년간 고아들의 벗이 되어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헐벗고 굶주리면서 푸른 꿈과 사명감을 다 쏟는다. 낮에는 원생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고, 밤에는 한영고에서 실력을 닦는다. 19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한국신학대학을 입학해 졸업한다. 그후 20여 년간 청소년 운동의 개척자로, 기독교문화 운동의 기수로서, 목회자로서 학교와 교회와 사회에 크게 봉사하신다.

첫 번째, 청소년 운동의 개척자로서는 1947~1955년 8년간 서울 중앙YMCA 간사로 봉사하면서 종로YMCA 지하실에서 유랑하는 소년 20여 명을 모아 밤마다 공부를 가르치는 등 생활지도를 하고 낮에는 그들을 자립시키기 위해 구두닦이를 시켜 일하게 했다. 1951년에는 난지도에 한국보이스타운(소년촌)을 건설해 고아와 불우 청소년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 4년간, 6.25 피난시절에는 제주도에 있는 한국보육원에서 고아들의 벗이 되었다.

“너희들의 가슴에 한 개씩 가진 거문고를 내가 울려 주려 한다”는 모토로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민주시민으로 자립하기를 소원하셨다. 1961년에 미국보이스카웃 간사학교를 수업하신 후 3년간 한국보이스카웃 간사장을 역임하시면서 교회 내의 보이스카웃 창단 등 한국보이스카웃 운동을 이끄셨다. 보이스카웃 정신으로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지도자셨다.

두 번째, 기독교문화 운동자로서는 「크리스챤신문」창간, 어린이잡지 「새벗」편집장, 「기독교교육」주간, 1966년부터 3년간 기독교교육협회 간사를 역임하시며 출판과 강연으로 기독교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셨다.

「크리스챤신문」 창간목적이 “크리스챤신문은 교회에 순종한다. 그러나 불의와 세속에는 용감히 항거한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이며 크리스챤신문의 주장이다”라고 밝히신 목사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화를 쓰신 아동문학가셨으며 구연동화가이시다.

세 번째, 무엇보다 그는 목회자로서 1955~1960년 새문안교회 부목사, 1960~1961년 대광중•고 교목, 1961년부터는 생의 마지막 10년을 영암교회에서 학생과 성도, 그리고 교회를 생명이 다하기까지 사랑하고 헌신하신 목사님이시다.

그는 히틀러 폭정에 항거하다 처형을 당한 독일 고백교회 본회퍼 목사님을 자주 언급했으며, 대광중•고 교목으로 계시던 4.19의거 때는 불의에 항거해 데모하려는 학생들 앞에서 이들의 안전을 위해 먼저 하나님께 기도드린 후 함께 데모 대열에 참여하기까지 학생과 나라를 사랑하신 목사님이시다.

1964~1965년 전국기독교교육자대회(총무:김활란 이화여대총장)와 초교파 전국복음화운동(대회장:한경직 목사)의 실무역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하는 등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의 선구자시다.

황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유선 여사는 ‘자녀에게 주는 편지’에서 지금까지 잘 운영되고 있는 영암교회 우신장학회가 태동하게 된 우신장학기금 기탁 동기가 황 목사의 유언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970년, 너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닷새 전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관여했던 기독교교육협회에서 심장판막증으로 10개월이나 앓고 계신 아버지에게 1000불 정도를 가져왔다. 그 돈을 내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부탁하셨다. ‘나는 공적으로 남긴 돈이 하나도 없으니 이 돈을 쓰지 말고 따로 두시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게 되니 그 말씀이 유언같이 느껴져 10년 동안 시무하신 영암교회에 장학금으로 바치게 되었단다.”

뭇 성도에게 울림을 주는 설교자!

언행일치의 삶을 사신 목사님!

청빈의 삶을 사시면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신 목사님이셨다.

많은 분들이 구독하시어 황 목사님의 훌륭한 삶과 정신이 계승되기를 바라며 내년 2월 19일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에도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린다.

장지우 장로

<영암교회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준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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