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경사 났네, 경사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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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전 유성구 엑스포 아파트에서 살던 어느 해 초봄의 일이다. 같은 아파트의 지인 한 분으로부터 갓 부화(孵化)된 병아리 세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강원도 원주의 야산에서 수 백 마리의 닭을 방목하고 있는 사돈댁에서 얻어온 것이라고 했다. 과일상자 하나를 가져다가 아파트 베란다 한쪽에 임시로 병아리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는데 두어 달이 지나자 병아리가 크게 자라 세 마리가 함께 지내기에는 상자의 공간이 좁기도 하고 또 병아리가 내 뿜는 배설물로 인하여 악취가 온 집안에 퍼지니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전 근교에 친지가 가지고 있는 조그만 산밭에 전에 사용하던 소형 양계장이 비어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친구의 도움을 얻어 그곳으로 병아리 세 마리를 옮겨 놓았다. 큰 그릇에 물과 먹이를 넉넉히 준비해 주고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 번씩 방문하곤 하였는데 주인이 방문하는 날은 병아리들이 해방되는 날이다. 좁은 양계장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병아리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일단 양계장 우리를 빠져나와 ‘해방의 감격’을 맛본 녀석들을 다시 우리 안으로 몰아넣는 일이 쉽지 않다. 어느 날, 해 질녘에 병아리를 우리 안에 몰아넣기 위해 가느다란 싸리나무 가지를 휘젓다가 병아리 한 마리의 다리에 정통으로 맞아 병아리의 가느다랗고 약한 다리가 똑 부러지게 되었다. “아뿔싸!” 

다리가 원상대로 붙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하면서 ‘부러진 제비다리’ 싸매주는 흥부의 심정으로 다리에 가느다란 의짓대를 대고 끈으로 감아주었더니 한 달포가 지나자 언제 부러졌더냐 하는 식으로 다리는 정상으로 회복되어 감았던 끈을 풀어주니 병아리는 잘도 뛰어 다녔다. 모든 생물에는 생득적(生得的)인 자연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본다. 병아리 세 마리가 잘 자라 닭의 모습을 갖추면서 서서히 암수의 구별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암놈이 두 마리에 수놈이 한 마리이니 아주 이상적인 성비(性比)를 이루게 되었다. 

옮겨 놓은 지 4-5 개월이 지나다 보니 암탉 두 마리가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알을 낳기 시작하였다. 알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더니 다시 두어 달 후에는 암탉 한 마리가 둥지에서 알을 품기 시작하였다. 약 일주일 후에는 다른 암탉 한 마리도 알을 품는데 합류하고 있었다. 닭이 품은 알의 숫자가 여섯 개였다. 

암탉 두 마리가 알을 품기 시작하고 나서는 먹이를 주어도 둥우리에서 내려오지를 않는다. 이따금 둥우리에서 내려와도 먹이는 먹지 않고 물로 갈증만 채우고 다시 둥우리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미닭의 대단한 모성애를 확인하게 된다. 어미 닭이 알을 품기 전에는 분명히 암탉의 빨간 벼슬이 빳빳하게 위를 향해 곧추 서있었는데 알을 품기 시작하여 보름이 지나자 그 빨갛던 벼슬이 다소 검붉은 빛을 띠면서 벼슬이 구부러지기 시작하여 완전히 옆으로 누워버린 것이 아닌가! 알을 품으면서 섭취하는 영양도 부실하고 체력도 달리고 기진(氣盡)한 증거이리라. 다시 한 번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목숨 걸고 몰입하는 어미 닭의 자식을 위한 헌신적이고도 희생적인 모성애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닭이 알을 품은 지 3주가 되는 주간의 주말을 이용하여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다. 오전 11시경에 닭장에 도착해 보았으나 특별한 징후가 없더니 오후 1시쯤 되었을 때, 수탉이 갑자기 암탉처럼 요란스럽게 “꼬꼬댁~ 꼬꼬댁~”을 반복하며 요란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수탉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다싶어 암탉이 품고 있는 둥우리 쪽으로 가보니 둥우리 속에서 아주 작은 “삐악 삐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수탉의 “꼬꼬댁 소리”는 암탉의 품속에서 부화되고 있는 새 생명에 대한 신비를 알아차리고 환호하고 있는 것이렷다. 어찌 들어보면 수탉의 “꼬꼬댁~ 꼬꼬댁~”소리는 “경사 났네, 경사 났어!”를 반복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예상대로 새 생명의 수효가 여섯 마리였다. 산모와 아기들이 모두 건강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날 귀가 길은 마치 새로운 여섯 쌍둥이 ‘손주’라도 본 것처럼 내 머릿속은 온통 감동과 환희(歡喜)로 가득 차 있었다. 오, 생명의 신비함이여! 오, 조물주의 놀라운 창조의 섭리여!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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