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아버지만 따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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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대학교에 입학한 후의 일이다. 교복을 입고 모든 생활에서 교칙에 의한 지도를 받던 고등학교 시절이 끝나고, 자유롭게 옷을 입고 어떤 규제도 받지 않으며, 사회에서도 어른 대접을 받아 이제는 정말 살만하고 꿈을 펼칠 때라고 자만하면서, 젊음의 낭만을 펼친답시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보다는 놀기에 심취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이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시험이 있어 그동안 게을렀던 태도를 바로잡고 벼락치기 공부라도 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공부하기 전에 화장실을 가다가 아버지의 서재를 지나다 보니, 성경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았고, 잠시 후에는 한결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따금 새벽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책을 읽는 자세나,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보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기도하는 자세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만이 대부분이었고, 따라서 나와 함께 TV를 보든지 무슨 놀이를 하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내가 성장해 어른이 된 후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정녕 목사나 학자의 자세라고 느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갖게 됐다. 성장하는 동안에 아버지에게서 한 번도 욕설은 물론 꾸중도  들어본 기억이 없고, 공부하라고 재촉하거나, 나의 행동에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냥 묵묵히 나를 바라보면서, 마치 ‘나는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니, 너는 이러한 나를 따르라’고 무언의 가르침을 전하는 전도자의 모습이었다. 물론 재미도 없고, 화끈하지도 않았고 대신 무섭지도 않았지만 마치 인생의 정도를 걸어가는 수도자의 자세를 보는 듯했다. 그러기에 비록 내가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생활을 할 수는 없지만, 내 나름대로 필요하고 따라가야 할 점은 따르고 실천하기로 했다. 그 결과로 내 인생도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그런대로 올곧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후에 나도 자식들을 기르면서 비록 훌륭한 아버지는 못되어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 친근하고 동등한 인격의 아버지, 정다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로 노력했다.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때에도 공부를 할 때도 또한 제 나름대로 특별활동을 해도, 반대하거나 야단치지 않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나는 단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후원을 하면서 무섭고 어려운 아버지가 아닌 따뜻하고 사랑을 지니는 가족으로서의 자세를 지니면서, 다만 항상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기를 노력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내가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그런 ‘아버지의 자세’를 아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정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지키고 있다. 6월 셋째 주일은 아버지날로 지키면서 아버지의 사랑도 기리고 있다. 이제는 내 품에 있던 아들이 커서 완전한 어른이 되었으니, 만나면 악수하고 때로는 포옹도 하면서 동등한 인격자로 대접하고 있으면서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로 변화하기도 했다. 가족과 마찬가지로 함께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과의 관계도 이런 가족 같은 관계인 것이 사실이다. 다만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신앙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교회의 직분이 있다고 이것이 사회에서의 계급 같지가 않은 것을 유념해서 필요 없이 남을 가르치지 않고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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