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언더우드 2세와 6.25 전쟁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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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선교를 독려한 언더우드 1세 – 「한국이 부른다」

언더우드 1세는 「한국이 부른다 The Call of Korea」 라는 선교보고서를 작성해서 미국 교회가 대거 한국 선교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1908년 펴낸 책인데 안식년을 맞은 그가 지난 23년 동안의 한국 선교 사역을 보고하면서 이 시대 최대의 구령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한국으로 와서 선교 사역을 펼치도록 촉구한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상업으로 일본은 군사로 그러나 한국은 기독교로 일어난다는 그의 비전이 한국 선교 호소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의 호소를 듣고 실로 여러 교파의 많은 선교사가 한국으로 왔다. 언더우드가 세운 연세대학교의 초대총장을 지낸 백낙준 박사는 1959년 언더우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연세대학교 창립자 원두우 박사 소전」을 발행한 일이 있다. 백 박사는 이 책에서 언더우드의 여러 방면의 공적을 소개하던 중 언더우드가 속한 미국북장로교 뿐만 아니라, 미국남장로교, 호주장로교, 캐나다장로교 등에서 언더우드에게 감화를 받은 선교사들이 앞다퉈 한국 선교에 나섰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 선교 제1, 2위 국가에 올라가 있다. 언더우드 1세의 비전이 현실이 되었다.

2.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으로 미국의 한국 선교를 독려한 언더우드 2세

언더우드 2세 역시 아버지의 한국 선교 호소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의 부친이 세우다가 과로로 급서하고만 연세대학교를 교수, 부교장, 교장, 명예총장으로 섬기면서 일제하 뿐만 아니라 미군정, 대한민국 건국과 6.25 남침 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인해전술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 무렵까지 지켜온 언더우드 2세였다. 25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1885년부터 1916년까지 근대 한국에 천국을 건설해간 아버지의 뒤를 이어 1890년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1912년 한국에서 준선교사로 선교 활동을 시작해 1951년 2월 20일 부산의 한 초막에서 연희대학교 명예총장으로 급서하기까지 그의 온 생애는 한국 선교에 바쳐졌다. 그 와중에서 공산 게릴라의 손에 부인 와그너 여사를 잃었고 그 역시 그때 얻은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언더우드 2세 역시 아버지처럼 「한국의 비극과 믿음 Tragedy and Faith in Korea」이라는 책을 써서 미국과 미국 교회에게 한국 선교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저서라고도 할 유언과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권고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낡은 한국은 죽고, 새로운 한국이 두 발로 서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이천구백만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듣고 싶어 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문이 열려있다. 당신은 그것을 보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어떤 사람도 닫을 수 없는 문이 네 앞에 열려있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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