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행운의 선물 <1>

Google+ LinkedIn Katalk +

1991년에 큰아들 내외가 우리를 초청해 주어 미국 영주권을 받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한국에 미련이 있어 한국으로 왔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아무래도 노후의 삶을 큰아들 곁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자 하는 큰딸도 우리와 같이 살기 원해서 함께 떠나게 되었다. 큰딸은 지휘공부를 하려고 미국 월드미션 대학원 지휘과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공부하는 동안 장로님과 함께 아이들 셋을 돌보며 살았다.

처음 도착해서 약 4년은 밸리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한 울타리 안에 집이 5가호가 있었는데 주인집이고 다른 4가호에는 세입자들이 살았다. 주인과 세입자들 모두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너무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때 아주 고마웠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천식과 관절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최연기 목사님께서 프로폴리스를 나의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주셨고, 그리고 거의 매주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영양 보충도 해 주셨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나는 adult school에서 ESL class를 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학교 시설이 너무 좋고 선생님들도 좋아서 즐거웠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친구도 사귀게 되고 생활이 즐거웠다.

큰딸이 공부를 마치고 새창조 교회에 전도사로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다. 교회가 집에서 멀어 분위기 좋은 이웃을 떠나서 토렌스로 이사를 했다. 밸리보다는 좋은 동네이지만 이웃에는 한국분들이 살지 않아 외로웠다. 큰딸이 성가대 지휘를 해서 나도 나이가 70이 넘었어도 성가대원으로 서게 되어 행복했었다.

가끔 장로님 친구분들이나 나의 친구들을 만나러 다운타운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 번 환승을 하고 내려서 다시 전철 타고 약 2~3시간이 걸렸다. 65세 이상은 버스표를 무료로 주기도 하고 돈으로 내면 1불만 내면 되어 교통비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2009년 6월 26일에 장로님 친구분들 만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엘카미노 대학 앞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미국인 남자분이 땅바닥에 1센트 동전을 줍더니 자기 옷으로 깨끗이 씻은 후 웃으면서 나에게 ‘행운의 선물’이라며 주었다. 나는 속으로는 ‘1센트가 무슨 선물이지!’ 하면서도 하도 정성으로 깨끗이 씻어서 주시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땡큐”하고 받았다.

그리고 나는 혹시 엘카미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며 저기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라고 소개를 했다. 나도 곁에 있는 장로님을 소개도 하면서 가족들도 소개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 목사님이 나에게 영어 잘한다고 칭찬도 해 주었다.

그동안 adult school에 다니면서 대화의 두려움이 없어졌던 것 같았다. 누구나 칭찬은 기분이 좋고 용기가 생기게 하는 것 같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선한 목자로 보였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