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단상] “교회와 양을 지켜야 한다” 다시 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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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부교회와 원산 순교자 조희렴 목사-경신인의 자랑)

조희렴 목사 순교 68년 만에 동판 부활  

이날 오후 2시30분 남부교회 대예배당에선 특별한 예배가 진행됐다. ‘순교자 조희렴 목사 기념예배 및 제막식’. 당회장 윤교식 목사가 올해 백수(白壽·99세)를 맞은 원산 남부교회 출신 김명옥 은퇴권사 등 원로들을 맞았다. 김 권사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들이를 할 만큼 육신의 축복을 받았다. 원로들은 평안한 얼굴로 순교자를 추모했다. 해방후 38남북이 분단되어 신학교와 교회가 폐쇄되고 일제의 발악이 거세지며 조 목사는 친미파로 분류돼 투옥된다. 석방 후에도 교수권 박탈과 학교 포기 강요가 이어진다.  조 목사는 흩어진 교우들을 모아 원산 남부교회를 세웠다. 그는 공산 치하에 목회활동을 계속했다.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정치 참여를 제안받았으나 북한 교회를 지키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보고 교회와 양을 지키기 위해 일거에 거절하고 교회를 지켰다. 교인들과 함께 남으로 피란와 교인들을 돌보던 조 목사는 교인들의 간절한 만류에도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원산 남부교회로 돌아갔다. 북한은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면서도 조희렴 목사를 원산형무소에 수시로 투옥하다가 1950년 6.25가 발발한 10월 국군의 원산 입성이 코앞에 이르자 조 목사는 예비 검속돼 10월 9일 원산형무소 뒷산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집단 총살형을 당했다. 목회자가 순교한 슬픔을 가슴에 안고 원산 남부교회 교인들은 북진한 국군이 잠시 주둔한 1950년 크리스마스를 예배와 찬양을 마음껏 누렸다. 하지만 이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국군과 유엔군이 남으로 밀려 1·4후퇴로 성도들은 원남을 강행해야 했다. 홍진상(현 남부교회 은퇴장로) 등 성도들은 목선과 LST 등을 얻어 타고 허기와 추위를 이기고 부산에 도착, 엑소더스에 감사해 부산 용두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원산 남부교회’라는 성전 간판을 걸고 감사예배를 드렸다. 조희렴 목사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강한 사모 박금려(1899~1988) 

정신여학교와 오사카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관서교회 전도사 마르다윌슨신학교 교수 및 사감으로 재직 여전도회운동을 적극 전개했다.  1932년 원산 석우동교회에서 조희렴 목사와 결혼했다. 사모는 유대인식 육아법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함남노회 여전도연합회 서기 및 회계로 헌신했다. 장남 조현규(2003년 작고) 목사는 남부교회와 성결교에서 목회를 했다. (순교자 조희렴 목사 경신의 자랑)

김종희 목사

• 경신 중ㆍ고 전 교목실장 

• 전 서울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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