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선교적 일상(日常)을 사는 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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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달란트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일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오늘 소개하는 곽만영 장로님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있는 분이다. 그처럼 소도시에 위치한 미션 스쿨의 교사, 교장 선생님, 작은 농촌 교회를 섬긴 전도사님, 대학교 옆 교회의 장로님, 시인인 동시에 수필가 등 다양한 이력(履歷)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흔치 않다. 여러 호칭 중에서 필자는 장로님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 

곽 장로님의 증조부인 곽석진은 경북 북동부지역인 영양에서 최초로 복음을 받아들인 분으로 알려져 있다. 후에 영수가 된 그는 1903년에 영양군 청기면에 찰당골 교회와 1905년에 영양군 일월면에 오리교회를 설립했다. 곽 장로님은 영양 골짜기인 오리동에서 출생했다. 오지(奧地) 중에서도 오지인 고향 오리동을 떠나 안동과 서울에서 학업을 마친 이후 곽 장로님의 평생 삶의 자리는 안동이었다. 은퇴한 이후 그는 다시 고향 땅 오리동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안동 촌사람, 오리동 촌(村)사람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첨단적 사고로 꽉 채워진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오지에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미국에서 유학생활도 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났고, 복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같은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그는 늘 고백한다. 

곽 장로님은 젊은 시절 안동지역의 시골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겼고, 선교회를 조직하여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선교를 돕고 세계 열방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후원하였으며, 모교인 미션 스쿨에서 일생동안 교사와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면서 크리스천 교사회를 조직해 섬겼으며, 안동과 다른 지방의 여러 기독교 유관기관에서 봉사함으로써 전 생애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비록 그가 목회자는 아니지만 오히려 목회자보다 더욱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앞장서 왔다.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일생동안 누구보다 치열한 선교적 삶을 살아왔으며, 또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 입성하기 전까지 그가 복음을 위한 삶을 이어가리라 의심치 않는다. 

곽만영 장로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출생한 이후 단 한 번도 곁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귀한 도구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선교적 삶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달려온 선교적 일상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전도를 더욱 어렵게 하는 코로나19는 그리스도인을 무척 낙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선교적 삶을 살다보면 호흡하며 밟고 있는 이 세상이 결국에는 하나님 나라로 바뀌게 될 그 날이 오지 않겠는가?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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