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천박한 사회의 예배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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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요 음악가요 철학자요 신학자요 반핵운동가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는 20세기 전반부를 살다간 인물이다. 그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이나 된다. 그런데 그가 바라본 시대 상황은 100년간의 시대의 차이를 넘어서 우리에게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1923년 작 ‘문화철학’(Kulturphilosophie)에 나오는 글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만하고 집중력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교양을 위하거나 또는 그것과 더불어 문화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모든 기관에 반작용을 미치게 한다. 극장(공연장)은 오락장이나 구경거리의 마당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으며, 유익한 책은 오락적인 심심풀이의 것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잡지나 신문도 점점 더 모든 것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독자들에게 제공되어야만 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신문과 50-60년 전의 신문을 비교하여 본다면 신문이 이런 점에서 얼마나 심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정신생활을 지탱해 나가야 할 기관들이 한번 천박한 정신으로 물들게 되면 그와 같은 사태에 이르게 한 사회에 대하여 도리어 반작용을 미치고 사회로 하여금 정신을 상실하게 만든다.”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점점 사색을 잃어버리고 천박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모든 문화 예술이 이러한 경박성을 따라가고 부추기는 가운데 서양 문화 전체의 저질화와 몰락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문명화된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게 되는 배경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100년이나 더 지난 우리의 시대는 문화의 천박함이 몇백 배나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책이고 신문이고 방송이고 뉴스고 간에 정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원색적이다. 예술이고 문화고 문학이고 음악이고 드라마고 간에 말초신경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외설적 변태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교회는 어떠한가? 선동적인 예배언어와 무대음악을 방불케 하는 찬양의 제스처와 원색적인 축복의 내용 속에서 한국교회 예배는 천박해지고 있다. 기독교는 종교적 경건성과 신비성을 상실하고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감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교회의 세속화를 막아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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