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내가 쓴 방송극본 ‘9.28의 감격’ 연출 속에 나도 성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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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해병대는 1950년 8월 통영상륙작전에 승리하며 귀신잡는 해병 소릴 들었다. 뒤이어 인천상륙작전, 도솔산고지 탈환작전, 김일성고지 탈환작전, 양도작전 등의 승리를 이루어 해병5대 작전이 대한민국 국군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팔각모를 쓰고 용맹스럽고 씩씩한 해병 용사가 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나는 부산에서 해병 132기로 입대하여 진해에서 3개월 고된 훈련을 받고 자랑스런 해병이 되었다.

우연히 내무실 청소중 만난 3중대장 이병우 대위가 함양 한고향 출신임을 알았다. 훈련이 끝나고 부대 배치될 때 진해 해병장애물교장 설치할 작업요원 50명 차출 명단에 내 이름도 있었다. 고향사람 이병우 대위 배려로 생각되었다. 해병장애물교장 시설공사가 다 끝나고 해병진해기지로 배치될 때 내가 영선중대 남겠다고 내무실에서 하사들에게 말했더니 나의 뜻대로 영선중대 해병이 되었다. 행정요원이 되어 근무하다 1963년 1월 30일 해병진해기지사령부 주최 반공웅변대회에 선임하사관 지시대로 내가 영선중대 웅변 연사가 되었다. 나는 “5.16 군사혁명과 우리의 각오”라는 연제로 진해군인교회에서 열린 반공웅변대회에서 13명의 연사들과 겨루어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당시 해병진해기지사령관 송인명 준장 이름으로 반공웅변 일등상을 받았다. 부상품은 없었다. 그러나 웅변대회를 주관했던 황의구 정훈참모가 웅변대회 일등 수상자 나를 정훈참모실 정훈병으로 뽑아 주었다. 나는 진해주보를 편집 제작 발송하는 일에 전념했다.

해병 진해주보에 나의 시와 수필 콩트 등을 발표하며 문학활동을 열심히 했다. 1964년 초가을 무렵 나는 ‘9.28의 감격’이라는 방송극을 썼다. ‘나오는 사람들’은 강상호(해병대령), 이정숙(그의 아내), 강경숙(그의 딸), 노파(그의 장모), 김수병(해병 사병) 5명이 나온다. 1964년 9월 25일 마산방송국에 가서 방송국 전속 성우 주시천(강상호 역)의 연출 지도를 받으며 한성자(이경숙 역), 최경미(강경숙 역), 이정자(노파 역) 등의 성우들과 나도 김수병 역을 맡았다. 수도탈환 14주년 되는 날 아침 강상호 대령은 딸과 9.28과 딸의 생일이 겹치는 날이라고 대화를 나누다가 강 대령은 해병 소위로 수도탈환전투에 참여했던 그날을 깊이 회상해 본다. 아내 정숙과 장모를 두고 혼자만 피난했다가 해병장교가 되어 104 연희고지를 돌격하는 전투중에도 재빨리 틈을 내서 집을 찾아가 사랑하는 아내 정숙 노파 장모 갓태어난 딸 경숙이까지 극적으로 만나보고 전투 현장으로 달려온다. 그런데 자기도 두고 온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김수병은 총을 맞고 전사한다. 내가 맡은 역인데 “소오대장~니임”하며 사르르 죽어가야 하는데 그 죽는 전사장면이 어려워 한참 애먹었다. 우리의 연출시간은 22분 걸린 방송극이었다.

그해 9월 28일 해병진해기지사령부 옥상에 올라가 정훈참모실 해병 5명이 라디오 앞에서 감회 깊게 들었다. 내가 쓴 방송극  ‘9.28의 감격’은 마산, 진해, 창원, 진주 등지에서 청취했다고 생각된다. 나도 ‘9.28의 감격’  방송극 연출에 처음 성우로 출연하여 총 맞아 전사하는 장면의 목소리가 잘 연기되지 않아 한참 연습 끝에 애인을 만나지 못하고 김수병 나는 강상호 소대장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조용히 죽어갔다. 실전 전투에 이봉출 중대장(해병 예비역 소장 파월 초대 청룡부대장 역임)이 영천에서부터 안산을 거쳐 미해병대보다 연희고지 점령 정상에서 한국해병대가 먼저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해병대 박 소위와 해병 몇 사람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휘날렸다. 수도탈환전투 강 소위가 대령 진급되어 소위로서 참전용사가 되어 용감무쌍했던 그날의 회상 속에 부하 김수병 역을 맡고 연기 속에 죽었던 나는 함께 연기했던 성우들 그날의 정훈 해병들이 마냥 그립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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