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의문(疑問)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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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행위를 선문(禪門)에서는 공안(公案), 고칙(古則) 또는 화두(話頭)라고 한다. 말씀 화(話) 자와 머리 두(頭) 자로 된 화두(話頭)에는 말보다 앞서가는 것, 언어 이전의 소식이라는 뜻이 함의되어 있다. 참된 도(道)를 밝힌 말 이전의 소식으로 마음을 스스로 잡는 방법을 화두법(話頭法)이라고 한다. 공평할 공(公) 자와 책상 안(案) 자로 된 공안(公案)에는 누구든지 이대로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불교 선종(禪宗)의 조사들이 만들어 낸 화두의 종류로는 1,700여 종류가 있다. 참선 수행자들이 널리 채택해 참구한 화두로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시심마(是甚麽-이 무엇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뜰 앞의 잣나무)’, ‘마삼근(麻三斤)’, ‘건요궐(乾尿橛=마른 똥막대기)’ 등이 있다. 그러나 1,700여 가지 화두 가운데 한 가지를 취해 참선해 보면 쉽게 화두에 집중할 수 없다.  번뇌 망상이 자꾸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화두에 대해 집중이 되지 않고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입으로 화두를 외우는 송화두법(誦話頭法)을 선문(禪門)에서는 권한다. 입으로 계속해서 송화두(誦話頭)를 하다 보면 굳이 입으로 하지 않아도 화두가 목구멍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염화두(念話頭)로 바뀌게 되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하게 되면 일을 하거나 말을 하면서도 화두가 또렷하게 들리는 간화두(看話頭)가 된다. 간화두(看話頭)가 되었을 때 거듭 대용맹심을 불러일으키면 참의심(眞疑)이 생겨나서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닌 대무심(大無心)의 경지에 들게 되는데 이때의 화두를 참화두(參話頭)라고 한다. 화두가 또렷하게 잡혀서 놓아지지 않는 경지,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나 꿈을 꾸나 항상 참화두가 되는 경지에 이르면 7일을 넘기지 않고 확철대오(廓徹大悟:확연히 꿰뚫어 크게 깨우침)하게 된다고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라고 히브리서는 적고 있지만 사람의 성정(性情)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보고 믿는 사람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 등이다. 믿음은 약속에서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알 수가 없는,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에 주어질 좋은 소식이다. 도마 사도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부활한 예수의 몸에 난 창 자국과 못 자국을 만진 후 믿게 된다. 도마는 ‘보고 믿는 성정의 사람’을 대표한다. 이런 도마에게 예수는 “도마야, 네가 나를 보았으므로 믿는구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보지 않고도 믿는 성정의 사람’을 대표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 12:1)라고 말씀한다.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본 바리새인들은 ‘보고도 믿지 않는 성정의 사람’을 대표한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환영했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다.  

의심은 의심을 부른다. 믿고 의지할 때 마음이 평온해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는 말씀했다. 그 말씀을 믿고 예수를 의지하는 게 믿음이다. 그냥 믿고 의지하면 된다. 믿지 못함은 의문(疑問) 때문이다. 믿고 의지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된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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