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모성애적인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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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엄지공주들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출산시 체중이 1Kg도 안 되는 아이들인데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한 엄마가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작아서 집으로 데리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산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고 싶었지만,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젖을 먹일 수 없게 되었고 엄마의 젖은 자꾸만 말라갔습니다. 젖이 마르지 않게 하려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엄마는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의 사진을 찍어 와서 머리맡에 붙여놓고 바라보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꿈을 꾸며, 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젖이 말라붙지 않더랍니다. 이것이 어머님의 모성애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어머님의 모성애가 그대로 나옵니다. 어머니가 아이 낳기 전에 준비하는 일과 너무 비슷합니다. 인간이 불편함 없이 지내기 위해 공간을 만드십니다. 인간에게 씨 맺는 채소와 열매 그리고 짐승과 새, 옷도 만들어 줍니다. 모든 것이 준비된 후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모성애적인 디아코니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기의 삶에서 자신들은 고아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신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가나안의 신이 더 강해 보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잘못해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된 것보다 자기들의 신이 약하다고,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네가 가지고 놀던 물건들, 너의 방, 옷, 네가 즐겨 먹던 것 다 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내가 널 낳고 얼마나 좋아했는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시기에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창세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하나님은 어머니 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너희는 너희를 낳은 바위를 버리고, 너희를 낳은 하나님을 잊었다”(신32:18) 여기에서 바위를 대문자로 쓴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너희를 낳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옛날 왕이 모든 마을을 다스릴 수 없어 마을마다 동상을 세워 그 동상을 보면서 왕을 기억하게 합니다. 독일 신학자 폰라드의 해석처럼 하나님은 곳곳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을 세우시고, 우리들을 볼 때마다 주님이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이런 모성애적인 섬김의 모습 디아코니아의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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