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입원과 사랑의 고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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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춘원은 가부장 제도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결혼생활 등을 주장하는 ‘신생활론’과 ‘자녀중심론’ 등을 각종 신문, 잡지에 발표해 당시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장본인이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일간지를 도배하고 있었다.

언론 매체들은 이들의 연애를 귀신과 같이 알고, 이들의 밀월여행을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 선구자인양,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 보라는 듯이 티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 저녁 이들은 베이징 시내 어느 아담한 호텔에 여정을 풀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춘원의 주변에는 많은 신여성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춘원은 정말 허영숙을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고 지금 이러는가?

문학을 사랑하고 감정이 섬세하며 심약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작품이고 시인(詩人)인 춘원이, 세상속에서 계산적으로 살아 가는 허영숙을 과연 사랑하기나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독자들은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매사에 투쟁적이고 계산적인, 그리고 심성이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허영숙을 춘원은 진정 연인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그때 항간에 나돌고 있는 입방아 술 안주감이었다.

“쟁 우리들의 청춘을 위하여! 건배!” 두 남녀는 거실, 핑크빛 아늑한 조명 아래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또 건배하고 있었다. 여인은 빈잔에 또 러시아산 블럼 위스키를 가득 채웠다. “쟁 이번에는 우리의 결혼 약속을 위하여! 또 건배.”

두 남녀는 숨도 쉬지않고 또 주욱 마셨다. 이내 심장에서 기별이 왔다. 전신이 짜릿하며 기분이 최고조로 들뜨고 있었다.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남자의 뒤편으로 걸어가서 남자를 힘껏 가슴에 끌어안고 양 볼에 자기입술을 뜨겁게 비비고 있었다.

“사랑해! 당신의 사슴 눈동자를 보면, 난 언제나 숨이 멈출 거 같아.” “사슴 눈동자?” “그래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사슴 눈동자에 내가 뿅 했다는 거 아냐. 정말 가슴 떨리게.” 두 남녀는 똑같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춘원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여인을 번쩍 들고 침실에 갖다 눕혔다.

여인은 살며시 눈을 감고 있었다. 22년간 고이 간직해 왔던 자신의 모든 순정을 이 철부지 사슴 눈망을 청년에게 오늘 밤 아낌없이 다 주기로 하고 여인은 남자의 목을 더욱 세차게 힘껏 끌어안았다.

3일간 이들은 이 호텔에 머물면서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했다. 태우고 싶은 모든 것을 태우고 또 태우면서 사랑의 찬가를 높이 불러댔다. 그러면서 장차 이들에게 닥쳐올 온갖 고초와 시련에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잔 두 사람은 커피도 마시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들을 겸 호텔 1층 로비에 나란히 손잡고 내려 갔다. 신문 가판대에 있는 연민일보, 차이나 뉴스위크 등 여러 신문들을 이리 저리 살펴 보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도 이들처럼, 신문을 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든 신문들이 일제히 큰 머릿기사로 ‘파리강화회의’가 곧 열린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14원칙에 의거한 파리강화회의가 곧 열린다는 기사가 톱을 차지하고 있었다. 춘원의 눈이 크게 떠지며 화들짝 놀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영숙도 춘원을 바라보며 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서둘러 귀국해야겠어! 우리나라에는 큰 희망 뉴스야!” 춘원의 태도가 금새 싹 바뀌고 있었다. 청춘 남녀 사랑 따위는 안중에 전무한 사람처럼 금방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허영숙은 춘원의 갑작스런 엄숙한 태도에 짓눌려 아~ 소리 한번 못 내고 그냥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남녀는 서둘러 호텔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쩜 우리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겠어!”

춘원은 짐을 꾸리면서 혼잣말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허영숙은 모처럼 만든 귀한 여행을 이렇게 갑자기 접고 귀국한다는 것이 몹시 아쉬운 듯했다. 그러나 상황이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다음 기회를 봐야지…. 이들은 서둘러 짐을 다 쌌다. 더 주저할 거 없이 저녁배로 급거 경성으로 귀국하기로 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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