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고등학교 졸업 6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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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완연하게 노인이 되고 보니 추억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앞날에 대한 특별한 희망이 엿보이지 않으니 자연 옛날에 있었던 추억에 대해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가족보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더욱 애틋한 정을 느끼는 처지가 되었기에 어려서부터 함께 보냈던 동창들에게 이끌리는 감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을 한지 어언 60년이 지났기에 인생을 정리하는 구실로 졸업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자는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지난 3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함께 모이는 행사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기 어려웠지만 지난봄에는 가을이 오면 행사가 가능할 것 같은 희망이 보이기에 서서히 준비해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행사를 하기로 정하고 준비해서 얼마 전에 멋지고 감격적인 행사를 치렀다. 

나는 1962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어느덧 졸업한지가 60년이 되었다. 초롱초롱한 얼굴의 친구들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운명대로 이 세상을 살아왔다. 우리는 첫날은 호텔의 연회장을 빌려 200여 명이 만나 식사와 여흥을 하며 반가운 얼굴들을 확인했다. 그동안 너무 떨어져 바쁘게 살았던 때문인지 서로가 얼굴을 기억하기도 어려웠기에 가슴에 붙인 이름표를 보고서 옛 기억을 더듬어 확인하는 촌극도 일어났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만나서도 단숨에 ‘아무개야’하며 반말로 대화할 수 있음이 동창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즐겁게 떠들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사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때는 대부분 스무 살이 되려는 처지였는데 이제는 벌써 망구에 들어선 친구도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첫날은 어색하면서도 대화를 하면서 순식간에 옛날의 개구쟁이로 변하기도 하는 마술 같이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는 역시 친구임을 확인했다.

다음날은 미국에서 달려온 30명의 동창들을 포함해 100명이 버스 3대를 이용해서 2박 3일의 여정으로 남해안 일대를 관광했다. 첫날의 연찬회는 시간도 촉박해 서로가 흉허물을 털어놓을 여유가 없었지만 함께 숙박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틈틈이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덧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만은 사회생활에서 받았던 약간의 중압감도 던져버리고, 우리는 예전에 수학여행을 다닐 때와 같은 동심으로 돌아갔다. 개중에는 졸업 후 처음 만난 동창들도 있었으니, 그 많은 세월 속에 서로의 개성 있는 삶에서 갑자기 공통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지만 ‘동창’이라는 한 가지 공통분모로 우리는 뜨겁게 그리고 편안하게 뭉칠 수가 있었다. 내가 존경하지만 상당히 엄격하게 우리들을 훈육했던 김원규 교장선생님이 우리가 중학교 2학년 때에 부임했는데, 그때는 하늘같이 높아보였고 나이도 들어보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나의 아들과 동갑인 53세였으니, 우리 동창들이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함께 여행하면서 끊어지지 않는 대화를 즐겁게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 나이 때의 세월은 시속 80km로 달린다고 누가 그랬던가. 피곤하지만 즐겁게 그러나 보람 있었던 여행은 정말 화살처럼 흘러버렸다. 

아마 앞으로 다시 만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서로 자주 연락하고 또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서로의 건강만을 축원하면서, 짧았던 만남을 끝내야 했다. 헤어지기는 섭섭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매우 따뜻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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