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현대 교회 갱신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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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평생을 살면서 교회 생활을 해온 한 평신도가 포스트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교회 갱신에 대해 드리는 제언이다.

요즘 교회는 예배가 무너졌다며 여기저기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배라면 낯익은 교인들이 교회에 모여 순서에 따라 찬송하고 기도하고 설교듣고 헌금하고 축도로 마치는 것을 말하는데 코로나로 비대면 예배로 바뀌니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예배 의식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 같다. 교회 조직은 그대로인데 코로나로 금지되었던 집회가 풀렸어도 교인들은 교회에 돌아오지 않는다. 3년 가까이 비대면 예배가 몸에 밴 교인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선 교회에 꼭 출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한 교회에 교적(敎籍)을 둔 교인들은 한 목사 밑에 묶여 우물 안 개구리처럼 주일에는 타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볼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목사를 선택해서 집에서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어서 무척 편한 것이다. 교회가 교인 모아서 설교하고 헌금 걷고, 돌려보내는 것이라면 굳이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 교회 땅만 밟고 성수 주일하고 교회에서 맡은 의무만 다하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편하게 믿는 편을 택한 것이다. 

온전한 교회, 목사, 설교, 십일조, 믿음, 사랑 등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할 때가 되었다. 요즘은 양들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으니 그들을 이끄는 목자가 큰일이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보이는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 소명을 받은 참 제자가 목자이고 목사인데 만일 목사가 대책 없이 “성수주일하라”고 교인들에게 교회 출석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교인들을 길들여 쓰기 좋은 집짐승의 무리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는데 성도가 또 종의 멍에를 메서는 안 된다. 

어떤 교회에서는 형식적으로 교회의 마당만 밟고 다니는 현대 교인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누림’ ‘섬김’ ‘살림’을 8주에 걸쳐 소그룹으로 세미나를 하고 수료증을 주기도 한다는데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어떨까 한다. ‘누림’이 무엇인가? 교회는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이 세상의 고통스러운 수용소가 아니다. 주님의 은혜로 황홀한 기쁨을 지상에서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쉽지 않다. 은혜 전에 먼저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내 기도가 응답받지 않더라도 주를 원망하지 않게 되고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은혜로 천상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섬김’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돌리고 싶은데 주는 십일조나 헌물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이 오신 것은,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代贖物)로 주기까지 섬기기 위해 왔다고 말하며 오히려 우리에게 각양 은사를 주시며 남을 돕고 공동체를 “섬기라”고 하신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의 발을 씻으시며 이웃을 섬기는 본을 보이시기까지 했다. 그래서 풍성을 누린 만큼 남을 섬겨야 한다. 

끝으로 ‘살림’은 무엇인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남을 ‘섬기는’ 행복하고 복된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그리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부러워하는 이웃이 생기면 그때 “나와 같은 삶을 함께 살자”라고 권면해서 한 영혼을 얻으면 그것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아닌 참전도요 영혼을 살리는 ‘살림’이 된다. ‘누림’ ‘섬김’ ‘살림’의 삶을 사는 무리가 주 앞에 모여 주의 다스림을 받고 모든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지상의 낙원이며 천국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백성들이 ‘누림’ ‘섬김’ ‘살림’의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호를 가려내는 영안(靈眼)이 생겨서 온전한 교회, 온전한 교인이 되어 무너져가는 우리나라 온전한 우리 교회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오승재 장로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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