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첫사랑, 화가 나혜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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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내청각’에서 여성 화가 최초의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바로 이런 때 여자 보기로 눈이 높은 춘원이, 이 날 나혜석의 개인전에서 나혜석의 작품과 표정과 행동을 보고 흠뻑 반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날 춘원이 인촌 김성수 후원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고 첫 동경 유학생의 환영 파티 자리에서 그녀를 힐끔 봤을 때도 ‘참 아름답다’라고 생각했었다.

나혜석이 여성으로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춘원 자신이 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가장 매력적인 여인의 상을 두루 갖춘 여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제눈에 안경이었던가. 이 여인에게는 매혹적인 섹시함이 듬뿍 있었다. 살짝 웃어 보일 때 드러나는 보조개며 덧니는 춘원의 심장을 잠깐, 잠깐씩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녀가 행사장을 이리 저리 걸을 때마다 흔들어 주는 날씬한 허리와 히프는, 춘원의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고 있었다.

“나 춘원 이광수입니다. 오늘 이 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의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춘원은 전시장 중앙 좌석으로 걸어 나가, 나혜석에게 정중히 축하 첫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 네, 이광수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작품, ‘무정’ ‘개척자’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자! 이쪽으로.” 나혜석은 우수에 젖은 그녀의 까만 눈동자로 춘원을 바라보며 귀빈 본부석으로 그를 직접 안내하고 있었다. 

장내는 특별히 초청된 축하객으로 만장해, 좀 이른 시간인데도 입추의 여지가 없이 성황이었다. 이는 오늘의 주인공 나혜석의 인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날 춘원은 나혜석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어떤 여자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품어 소유하고 싶은 여자, 늘 함께 하며 평생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매력적인 여자를 오늘 이곳에서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날 자신의 차례 순서 축사에서 춘원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나는 오늘 나혜석 화백의 작품에서 놀라운 특징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림이 모두 살아서 생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제일이라고~.’ 무척 뽐내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나 작가는 모든 것이 일등이었습니다. 최고입니다. 나는 앞으로 모든 부분에 있어서 이 작가님과 호흡을 언제나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금 축사를 통해 춘원은 나혜석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모든 부분에서 나 작가는 수석이고, 최초며, 만능입니다. 그의 앞날은 시온의 대로처럼 늘 활짝 열릴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앞으로 나혜석 씨를 자주 뵙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부디 마음의 문을 열고 곁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늘 진심으로 여성 화가 최초의 개인전을 축하드립니다…중략”

춘원은 오늘 자신의 짝사랑이 어쩌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것은, 지금 나혜석이 천재 시인 최승우의 첫사랑을 잃고 망연자실, 가장 외로운 시간속에서 괴로워 하며 몸부림 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원은 자신의 축사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는 청원을 솔직하게 보냈던 것이다.

그 다음 날 나혜석은 춘원이 인편에 보낸, 밀회(密會)를 하자는 쪽지에 잽싸게 답장을 보내 왔다. 그 시간, 그 장소에 나오겠다고… 춘원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그날 약속 장소인 ‘은반’에 도착했다. 천하의 춘원이 왜 이렇게 떨고 있나?

늦은 9월 을씨년한 초저녁,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은반 따스한 실내 온도가 호화찬란한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실내를 아늑한 분위기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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