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은혜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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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은 크고 위대한 어떤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실 수 있었던 이유를 요한복음1:14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단 두개의 단어로 묘사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셨다. 예수님은 50%의 은혜와 50%의 진리로 충만하신 것이 아니라 100%의 은혜와 100%의 진리로 충만하셨다. 마치 100% 하나님이셨고, 100% 사람이신 것처럼 은혜와 진리가 전혀 충돌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DNA 를 확대한 그림을 보면 이중 나선형 대칭구조로 되어있다. 두 가닥의 DNA가 서로를 반대방향으로 감싸면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 이 두 가지가 충만하셨다. 

우리는 은혜를 추구하다보면 진리를 포기하게 되고, 진리를 추구하다보면 은혜를 포기하게 된다. 사람들이 더 쉽게 추구하는 것은 ‘진리없는 은혜’이다. 

세상은 거짓과 죄악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죄를 죄라고 지적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한다. 거짓에 대해 쉽게 용납하고 도덕적 기준을 점점 낮추게 되는 것이다. 

‘은혜없는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종종 먹이감을 구하러 다니는 사냥꾼처럼 다른 사람들을 성급히 판단하고 용서에 인색하다. 진리는 잘못 행한 누군가를 처리하는 살인무기가 된다. 누군가 잘못 행한 사람이 나타나면 조금도 긍휼함을 베풀 마음도 없이 그 사람의 인격과 모든 것을 다 쓰레기 취급해버린다.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은혜없는 진리’를 추구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모든 죄인을 용서하셨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도록 도와 주신다. 참된 진리는 은혜를 추구하는 것이며, 참된 은혜는 진리를 행하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다. 

진리만 외치던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사람들은 ‘은혜 없는 진리’를 행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은혜와 진리”로 그 여인을 대해 주셨다.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잘 들어보면 그냥 봐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 여인을 율법대로 죽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죄없는 자가 먼저”라고 하심으로써 더 정확한 진리를 말씀해주신 것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다시는 가서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베풀되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축소시키면 세상에는 구원의 소망이 없어진다. 우리가 진리를 축소시키면 세상에는 구원의 필요성이 없어진다. 우리는 이 세상에 구원의 필요성과 구원의 소망을 동시에 전해야 한다. 진리는 죄를 미워하고, 은혜는 죄인을 사랑한다. 이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할 때만이 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이고 우리가 행해야 할 길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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