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사렛 예수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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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나사렛에서 사셨다. 그래서 당시의 관습대로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당시 나사렛이 속한 갈릴리 지방은 이방 침탈의 역사 속에서 혼혈 정책에 의해 민족의 정체성이 무너진 곳이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갈릴리 지방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부르며 천하게 보았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일부 정치적 반역자들이 나사렛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나사렛은 유대인들이나,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리 만무했다. 

사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 베들레헴은 다윗 왕가의 근원지이다. 그렇다면 여러모로 나사렛 예수보다는 베들레헴 예수가 더 좋다. 그런데 왜 굳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셨을까? 나사렛 사람, 그들은 힘이 없어 강대국에 복속 당해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휘둘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을 이방의 피가 섞인 잡족이라 멸시했다. 나사렛 사람이란 바로 이러한 냉대 속에서 어쩔 수 없어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선한 것도 없고, 어떠한 소망도 없는 사람들,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엔 짐승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반인반수정도로 취급당하는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나사렛 사람이라는 이름은 우리들의 ‘영적 상태’를 가리키는 이름인지도 모른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 꿇고 살아가는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까 감히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름이다.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영적 무기력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는 우리들, 기도가 막히고 예배가 멈추고 영이 죽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다. “왜 너희는 빛으로 소금으로 살지 못하냐?”는 세상의 조롱과 비판 앞에 두려워 꽁꽁 숨어버린 우리가 바로 나사렛 사람이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라. 이런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승리 주시기 위해 오시는 최후 승리자가 나사렛 예수시기 때문이다. 멸시당하고 배척당하고, 매 맞고 배신 당하지만 끝까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시다. 절망 속에 자포자기하며 죽어있는 이들의 삶을, 성자 하나님이신 자신의 고귀한 생명으로 교환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가 십자가를 지신 나사렛 예수시다. 

저 골고다 언덕으로 시선을 옮겨 보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다. 그것 이상의 고통이 있을 수 없다. 더 이상의 절망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곳, 바로 그곳에 십자가가 있다. 그 십자가 가시관이 씌어져 피 흘리시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무엇이라 쓰여 있는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유대인의 왕이 나사렛 예수시다. 인류의 구원자 되신 만왕의 왕이 나사렛 사람이다.  

나사렛 예수께서 고통당하셨다. 그 이름이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대신하신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다. 그 이름이 코로나19의 절망 속에서 우리를 일으키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나사렛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구원하셨다. 그 이름이 영적 결박을 풀고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이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나사렛이라는 이름은 자포자기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예수와 연결 지은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는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불신과 분열, 죽음과 상실로 인해 절망하는 우리에게 생명과 소망의 이름 “나사렛 예수”로 오신다. 나는 오늘도 나사렛 예수를 고대한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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