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성녀 마크리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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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리나(327-330)는 체사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마크리나를 믿음으로 키웠다. 그의 어머니 에멜리아나는 딸이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리라는 태몽을 보았다. 그래서 마크리나는 성장해 어느 젊은이와 약혼을 했다. 그런데 그 약혼자가 결혼하기 전에 병으로 죽어 독신을 고수하며 금욕생활을 했다. 그는 태어나는 것이 한번이며 죽는 것도 한번이다, 결혼도 한번으로 끝나며 또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일은 불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활의 소망을 믿으며 나의 약혼자는 죽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기의 집에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양식과 의복을 주며 식구처럼 함께 살았는데 그 공동체가 점점 증가되었다.      

그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며 마크리나는 어머니와 의논해 이 공동체를 폰투스 지역으로 옮겼다. 그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녀원의 원장으로 헌신했다. 마크리나는 겸손의 사람으로 동거인들과 차별하지 않고 그들과 같이 음식을 먹으며 생활해 그들은 이러한 삶을 천상의 삶으로 여겼다. 분노가 없으며, 질투하지 않으며, 증오와 자만을 버리고 모든 헛된 욕망을 버리고 살았다. 육체의 소욕에 굴하지 않았으며 하늘의 능력으로 고차원적인 삶을  함께 기도하며 하나 된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았다. 

이 수도원의 규칙이 ‘바질의 수도원의 규칙’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질(Basil The Great)은 동방교회 수도원의 선구자로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모든 동방정교회 수도사들이 바질계열의 수도원 규칙을 준수했다. 마크리나는 신앙을 중심했음은 물론 학문을 철저하게 강조해 가르쳐 종국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수도사가 되도록 이끌었다. 마크리나의 영향으로 동생 바질과 닛사의 그레고리가 카파도기아의 유명한 교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와 함께 카바도기아의 세 교부로 일컬어지는데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 신학이 정통 기독교 신앙으로 자리를 잡는데 중요한 신학적 역할을 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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