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문화를 이해해야 현장선교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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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인의 결혼과 가정생활

역사는 새로운 현장의 문화를 만들어 내기에 1917년 러시아 혁명 후에는 민족자결 원칙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간섭을 하지 않았으나 중앙아시아 일대가 반혁명세력의 근거지가 되자 칸의 세력을 붕괴시킨 후 인민 정책을 세웠고 1922년에는 구소련연방에 가입하게 했던 역사 이해가 필요하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외에도 같은 튀르크계인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과 이란계인 타지키스탄 등이 구소련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스탈린 치하인 1930년대에는 사할린의 조선인도 이 일대로 강제 이주되기도 했다.

1990년 소연방이 와해하면서 1991년 9월 1일 이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모두 구소련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연방에 해당하는 독립 국가 연합의 일원으로 지금도 러시아와 경제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후 세계 40여 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고 1992년에는 UN에도 가입했다.

우즈벡인은 일반적으로 아주 일찍 결혼한다. 초등학교(1-11학년)를 졸업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19세인데 보통 결혼을 한다. 좀 늦더라도 남자와 여자 모두 20세 전에 결혼하는 것이 우즈벡의 조혼전통이다. 여자는 만 20살이 넘어가면 노처녀 소리를 듣는다. 종종 13세에 결혼을 하는 여자들도 있다. 지금은 돈 많은 부자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일부일처 제도이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돈을 주고 여자를 사온다. 그러므로 남자는 일반적으로 여자를 자기의 소유물로 보고 여자를 자신보다 낮게 여긴다. 여자 또한 자신을 남자보다 낮게 여기며 산다. 집안에서 여자는 종처럼 일하며 남편으로부터 시댁으로부터 동등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나 3월 8일은 여성의 날로 남자들이 여성에게 꽃과 선물을 준다. 여성의 날은 구소련 때 생긴 문화이다. 시골에서는 전통적인 결혼식을 하지만 도시에서는 서양식으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전통적인 농업사회로 대가족 단위로 살고 있다. 전통적으로 딸이 결혼을 하면 시댁으로 보내지만, 아들이 결혼하면 한집에서 같이 산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미리미리 자녀가 살 집을 마당에서 한쪽에 스스로 짓는다. 자녀의 집을 짓는 데는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며 가난해도 자녀를 많이 낳는다. 자녀는 알라신이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자녀의 생일이 되면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가까운 이웃과 친척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나눈다. 생일은 항상 저녁에 한다. 대가족 단위의 가부장적 가정제도로 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가족들은 가장의 권위에 복종한다. 마을은 가족 단위의 확장된 형태이며 마을마다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있다. 또한, 존경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마살라(Mahalia 특별상호 협력집단)가 구성되어 여성 문제, 결혼, 축제, 공휴일들의 날에 질서유지 문제들을 다루기도 하는데 행정 권한은 없다. 또한, 마을의 복지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선다. 우리나라처럼 급속도로 핵가족화가 된 가정에서 성장해 선교사가 되어 우즈벡에 가면, 이런 낯선 현장의 문화가 너무 이질적으로 다가오기에 동화하는 일이 선교의 첫걸음이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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