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진실에 영혼의 눈을 뜨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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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볼 때, 빨간 안경을 끼고 보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고 보면 파랗게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색깔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사건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6·25전쟁을 놓고도 어떤 이념의 안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실체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들이 인물을 놓고 평가할 때, 예컨대 이승만, 김구, 박정희, 김일성 등을 평가할 때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편향적 사고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7)”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분단의 비극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남북한 양 진영의 갈등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랑케(Leopold von Ranke)는 “역사란 있었던 그대로 보는 것이다(Wie es eigentrich gewesen ist?)”라고 했다. 영국의 근대 신학자 버틀러(Joseph Butler)는 모든 것은 있었던 그대로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했다(Everything is what it is, and not another thing).

동양사에 보면, 후한의 허신(許愼)이 기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사 기사자야 종수지중 중정야(史 記事者也 從手持中 中正也)”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史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가운데 붓을 잡고 옳고 바르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事)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은 기록함에 있어서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진실의 입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김종직(1431~1492)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인해 필화(筆禍)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것은 중국 삼국시대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항우(項羽)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해 왕위를 찬탈당한 의제(義帝)를 추모하는 제사문(祭祀文)인데, 세조가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한 억울한 사건을 비유적으로 쓴 글이다. 이로 인해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er)보다 150년 앞서서 영국에서 부패한 중세시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의 세속화를 질타하고, 교회개혁을 부르짖던 위클리프(John Wycliffe, ?~1384)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지 부패한 성직자들이 독점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교황보다 위에 있다···” 등을 부르짖다가 이단으로 몰려 결국 사후에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의 저작물이 소각당했다.

북한은 칠십년이 넘도록 김일성 3부자가 임기도 없이 죽을 때까지 권력을 독점하고 인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국가 권력은 공적인 것이지 개인 가족의 사유물이 결코 아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그 나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라는 우상적 존재가 아니다. 통치자가 죽어서까지 인민 위에 군림하는 풍토 조성은 민주화 시대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민주화시대는 진정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역사의 객관성을 상실하고 역사를 자기 안경에 맞춰 왜곡하고, 그런 왜곡된 역사를 계속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있다면, 이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맑고 깨끗하게 자라나는 꿈나무들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 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진실에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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