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모리아산의 디아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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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떠납니다. 그 시대의 여행 방식에 따라,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에 길을 나섭니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예루살렘 모리아 산까지는 10km 안팎의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모리아 땅의 산기슭에 도착해 번제에 쓸 나무를 메고, 불과 칼을 들고 아브라함과 이삭이 산에 오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 언덕까지 오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이삭이 순종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부전자전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 아들이 더 나았다고 평가합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이 제물로 결박될 때의 나이를 17세에서 37세 사이로 봅니다. 이삭은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갈 만큼 혈기왕성한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100세가 많은 아브라함을 제압할 힘은 충분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는다고 해서 그저 묶일 나이도 아니었고, 칼을 들어 내리친다고 그냥 당할 나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종합니다.

지금도 전통, 관습, 운명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있습니다.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지는 만행이 그것입니다. 성인식을 거행한다며 어린 남녀 아이들에게 성기 절제술을 버젓이 자행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 악행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한 이들의 체념이며 전통과 관습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복종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삭의 순종과는 다릅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거룩한 순종이고 희생입니다. 이것이 디아코니아(섬김)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최근에 은퇴를 앞둔 권사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앙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일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멈추지 않았던 봉사에 대한 기억들이었습니다. 과거엔 장례가 나면 교회 동산에 매장을 했기에 모두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장만해 언덕길에 실어 나르고 불을 피워 국밥을 해 먹는 수고로움이 있었습니다. 학생 수련회가 열리면 음식을 준비하고 봉사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희생이란 단어가 거의 없습니다. 봉사할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이런 시대에 자기 희생과 순종을 보여준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순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순종한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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